"나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만사가 선악 대결의 이분법이 아닌데 소설과 달리 영화는 이 놈은 착한 놈, 저 놈은 나쁜 놈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나눠진단 말이지." 어느 노(老) 연극 연출가의 말이다. 그가 뮤지컬 '와이키키브라더스'를 보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올해의 한국 창작 뮤지컬의 트렌드를 선도한 '와이키키브라더스'의 막이 올랐다. 임순례 감독의 동명 영화를 각색한 우리 영화와 가요에서 소재를 따온 뮤지컬의 시발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제작진에게 오프닝에 등장했던 송골매의 '세상만사'에 나오는 가사처럼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이라고 전하고 싶다.
이 뮤지컬은 추억 상품이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부터 김흥국의 '호랑나비'에 이르는 한국 가요의 히트곡들을 고스란히 수록했다.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등 곡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다. 보너스로 'YMCA' 등 팝송도 있다. 그러나 허전하다. 문제는 추억 상품의 완성도다.
물론 영화와 뮤지컬은 다르다. 영화 속 충고(충주고) 밴드 멤버들은 끝까지 함께 활동한다. 잠깐 등장했던 여고 밴드인 버진 블레이드의 비중도 거의 동등해졌다. 제작진도 "뮤지컬의 분위기는 영화와 다르게 밝고 역동적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 무대는 역동적이다. 윤영석 주원성 추상록이 만들어내는 충고 밴드와 김선영 김영주 박준면이 재현한 버진 블레이드는 탄탄한 기량을 선보인다. 특히 여배우 김선영의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는 단연 돋보인다.
하지만 1부의 고교시절의 꿈과 2부의 사회생활에서 잊혀진 꿈과 새로운 희망은 영화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뻔한 이분법이다. 주인공들은 선하고, 세상은 주인공들의 꿈을 가로막는 악이다. 원작 영화를 보지 않는 편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거기에 이야기가 길고, 무대와 소품의 전환이 많아 공연시간은 약 3시간. 이마저도 이야기가 충분히 전개되지 못하고, 배우들이 서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상당수다.
분위기의 차이 외에 영화와 무대의 차별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뮤지컬 배우 김장섭은 "뮤지컬은 시"라고 말했다. 시처럼 이야기의 정수만 남겨도 된다. 상상의 여백을 화려한 영상으로 채워줬던 영화 '시카고'와 달리 단순화한 무대와 생략이 많은 이야기로 상상을 자극한 뮤지컬 '시카고' 에서 인물의 선과 악이 모호하게 얽히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건 '맘마미아'도 마찬가지. 자연스러운 노래 진행과 엎치락 뒤치락, 개성 강하고 다양한 인물 이야기 속에 유쾌한 반전을 경험했던 관객들에게는 '와이키키…'는 좋은 쌀로 만든 아직 설익은 밥이다. 추억 상품은 옛 교복과 당시 히트곡이 전부가 아니다. '살인의 추억', '실미도' '말죽거리 잔혹사' 등 지나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성공 이유는 다른데 있다. 공연은 3월14일까지 서울 정동의 뮤지컬 전용극장 팝콘하우스. (02)3141―1345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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