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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우의 언론보기]<끝>입맛대로 보도한 "서울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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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우의 언론보기]<끝>입맛대로 보도한 "서울대 보고서"

입력
2004.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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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마다 아무 비판이나 검증 없이 똑같이 쓰기 때문에 곧 사회적 공식 용어처럼 사용되는 말들이 있다. 가령 '이공계 기피현상'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고등학생들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이학계와 공학계보다 의대와 법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담론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부재한다. 문학과 사학, 철학 그리고 이른바 비인기 사회과학의 전공 분야들은 '기피' 차원이 아니라 '고사' 차원에 접어든 지 오래임에도 언론의 관심사 바깥에 있고, 따라서 사회적 관심사 안에는 이공계만 들어가게 된다.

독자들은 이런 식의 기사를 보면서 그저 신문이 제시하는 내용만을 따라가며 읽지만, 신문들은 사실 어떤 입장과 관점을 갖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이라는 자명한 듯한 용어에도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경시와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공계의 발전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듯이 말이다.

신문이 '없는 일을 있다'고 하는 식의 왜곡보도는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신문에 실린 기사가 곧 사실의 충실한 재현이거나 객관적 제시인 것도 아니다. 신문은 객관보도를 명목상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고, 그 관점은 다시 특정한 계층과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1월 26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기사화했다.

지난 34년 동안 서울대 사회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계층구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연구 보고서이니 받아쓰기 보도를 하면 돼 신문들 사이에 보도의 차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이번 경우 신문들 사이의 관점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보고서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인 고학력·고소득 부모를 둔 자녀의 서울대 진학률이 해가 가면서 더 높아진 데 대한 각 신문들의 해석 경향은 크게 둘로 나뉜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은 부유층에 편중된 서울대 진학 이른바 '학력 세습'의 원인으로서 평준화 정책을 꼽는다.

그에 비해 한국일보나 한겨레신문 등은 사교육의 비대화가 교육현실 왜곡의 핵심임을 지적하고,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평준화 정책의 허점에 대한 보완을 주장한다.

평준화 폐지론을 펴는 신문들의 논리를 잘 살펴보면 특정 계층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준화 탓에 실력 있는 학생들은 공교육을 외면하고 강남 입시학원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그런 과외비를 부담할 수 있는 부유층 자녀들이 서울대에 많이 입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평준화를 폐지해서 고등학교 입시를 부활하거나, 자립형 사립고를 허가하면 그것이 공교육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곧 금력 차이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흥미로운 대목은 학력 세습이나 부유층에 편중된 교육 기회 같은 것들을 이 신문들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면서 정작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이 그런 부정적 현상을 더 강화시킬 우려가 큰 평준화 폐지론이라는 점은 자기 모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몇몇 신문들의 평준화 폐지론은 '가진 사람'들의 관심을 대변하는 기사이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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