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보수언론은 지난달 30일 일제히 추기경의 발언을 1면 기사로 실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관련 기사의 헤드라인을 각기 '친북…관권선거 논란…나라가 걱정'과 '관권 선거 땐 국민신뢰 잃을 것'으로 뽑았다. 같은 날 중앙일보도 1면 톱기사로 '나라의 전체 흐름이 반미 친북으로 가 걱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모두 김 추기경이 관권선거와 반미·친북 세력의 급성장을 우려하고 있으며,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를 비판했다는 내용이었다.그러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추기경의 고언(苦言)은 정동영 의장과 나눈 대화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었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현장에는 기자 몇 명만 있었다"며 "대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브리핑했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발췌해서 보도했다"고 말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도 "어수선한 시국에 대해 우려의 말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덕담이 주를 이뤘다"고 밝혔다.
보수언론이 추기경 발언의 특정 부분만 지나치게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그러자 보수언론의 보도를 기정사실로 전제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31일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는 손석춘(한겨레 논설위원)씨의 칼럼을 통해 "추기경의 정치적 발언이 현실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고 몰아세웠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추기경의 역할이 과대 평가 됐다"고까지 공세 수위를 높였다.
손씨의 칼럼에 나오자 보수언론도 즉각 "좌파가 종교까지 공격하려 한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했다. 조선일보는 2월 1일자에는 '오마이뉴스, 김수환 추기경 공격'란 기사를, 2일자에는 '추기경의 근심, 좌파의 걱정'이라는 칼럼을 잇따라 내보내며 손씨의 발상은 좌파 논객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며 색깔론을 들먹였다. 중앙일보도 이에 가세해 '추기경까지 흔들자는 것인가'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자신들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몰아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전제요, 독재적 발상'이라는 게 논지였다. 손씨도 2일 곧바로 '추기경 뒤에 숨은 저 골리앗을 보라'라는 칼럼을 통해 보수 언론이 종교의 권위를 악용해 자신들과 다른 논리를 공격하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추기경의 발언을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보도하고, 이런 보도에 근거해 자의적인 해석과 비판을 가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 민언련은 3일 성명을 내고 "손씨의 칼럼은 추기경의 발언 한마디가 일부 신문을 통해 과대포장된 행태를 지적한 것인데 일부 언론은 손씨가 무례하게 추기경을 비판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만 부각했다"고 비판했다. 주동황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성역으로 여겨졌던 부분이 토론 대상이 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데올로기와 색깔 문제로 비화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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