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에서 채옥과 장성백의 동굴 신을 촬영할 때의 일이다. 대본에 딱 들어맞는 동굴을 찾았는데, 문제는 미개발 동굴이라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강행하기로 했다. 관리자를 간신히 설득해 동굴 입구를 봉쇄한 철문의 열쇠를 받아든 순간, 심장은 콩닥콩닥 뛰는데 오히려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럴 때 보면 연출자는 제 정신 박힌 사람이 아니다.동굴에 첫 발을 디딜 때의 긴장감은 촬영이 탈 없이 진행되면서 잦아들었다. 스태프들이 조금만 큰 소리로 얘기해도 "동굴 무너진다"며 안절부절 못하던 섭외담당자도, 동굴이 떠나갈 듯이 "컷! 오케이!"라고 외쳐대는 내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동굴 안에서 불꽃 폭약을 터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재촬영은 없다. 딱 한번에 끝내자"며 스태프와 배우를 협박하고, 독려했다. 카메라를 세팅한 뒤 하지원과 나, 연출부 1명을 제외한 모든 스태프가 비교적 안전한 장소로 피했다. 언제 떨어졌는지 우리 옆에 버티고 있는 커다란 낙석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도화선에 불이 붙자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약이 터졌다. 그런데 불꽃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버렸다. 결국 그날 폭약을 네 번이나 터뜨렸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낙석은 조명감독이 나에게 겁을 줘 '무모한 연출'을 그만두게 하려고 일부러 던진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와도 또 '미친 결정'을 할 것 같다. 드라마를 찍다 보면 촬영 여건과 연출자로서의 욕심이 충돌할 때가 많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환경에서 연출자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 날이 와도, 연출자란 인간은 또 한계를 뛰어넘는 딴 생각을 할 것 같다. 욕심은 끝이 없다.
이 재 규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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