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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 체험 신대철 시인/보통사람처럼 살고싶다던 "실미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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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 체험 신대철 시인/보통사람처럼 살고싶다던 "실미도" 그들

입력
2004.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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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북파공작원은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됐지만 눈의 초점을 잃고 약한 모습을 내보일 때,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확인했다."한국영화 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실미도'를 본 시인 신대철(59·국민대 교수)씨는 "이중의 당혹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리얼리티가 부족한 데 낯설고 당황했다. 그런데 관객들은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데 더욱 당황했다"는 것이다. 신씨는 계간 '창작과비평' 2004년 봄호에 발표하는 산문 '실미도에 관한 명상'에서 이 복잡한 심정을 고백했다.

신씨가 영화의 리얼리티를 지적하는 것은 군 복무 당시 북파공작에 참여한 체험에 바탕해서다. 그는 북한 124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 한 달 뒤인 1968년 2월 ROTC 장교로 입대했다.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 책임자로 10개월여 근무하는 동안 그의 임무는 북파공작원이 북쪽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접근로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곳곳에 지뢰가 묻힌 길을 함께 밟았다. 지도로만 알려줄 수도 있었던 것을 직접 안내했다. 그들과 함께 지내고 나면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씨가 만난 사람들은 북파공작원 양성·파견부대였던 HID 후속 부대인 AIU 출신이었다. "항간에서는 대부분 북파공작원을 사형수, 무기수, 혹은 죄수들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에서 설득되어 온 사람들도 있었고 자원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신씨는 말했다. 어릴 때부터 부랑자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많았고, 우연히 '브로커'(물색요원)를 만나 인생을 바꿔보려고 공작원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모두 작전만 끝나면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북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지뢰가 나무상자 안에 담겨 탐지기로도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공작원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져서, 목숨이 위태로운 길임에도 나서서 호송을 맡았다"고 신씨는 돌이켰다.

"영화 '실미도'는 이런 인간적 면모를 짚는 대신 액션 묘사와 감상적 진행에 치중해 사실 같지 않은 부분이 많다. 특히 군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영화의 자폭 장면을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자폭은 치밀한 계획 아래 수행된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우발적 선택이 아니다. "영화에서 실미도 특수부대가 집단 자폭한 장면에 대한 신씨의 설명이다.

역사의 그늘이 걷히기 시작했어도 이런 어두운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신씨는 77년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내고 23년 동안이나 침묵했다. '무인도를 위하여'는 그를 단번에 문단의 중심에 자리잡게 했고 70, 80년대 문학청년들의 필독서가 됐지만, 막상 신씨는 군 복무 중 겪은 마음의 갈등과 상처로 시작(詩作)을 미뤘다. 그의 두번째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는 2000년에 나왔다.

그가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시로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89년 문학동인들과 실미도를 방문하면서였다. 2001년 작 '실미도'는 그 중 한 편이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실미도로 끌려온 그대들은?/ 단두대 같은 수평선에 목을 걸고/ 무엇으로 하루살이 악몽을 넘기고 싶었는가/ 누구의 조국, 누구의 통일을 위해/ 그대들의 피를 씻고 씻으려 했는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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