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수수께끼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수수께끼 파트너는 팔십 세가 다 된 나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기나긴 겨울밤, 열 개도 채 안되는 레퍼토리로 손자의 호기심을 채우느라 곤욕을 치르셨다. "아가, 수수께끼 좋아허면 낸중에 가난허게 사는디" 하시면, 나는 "아따 괜찮당께, 지는 가난허게 살라요" 라며 계속 수수께끼를 졸랐다.엊그제 제사를 지내는데 문득 할머니가 "에끼놈 거 봐라, 긍께 내가 뭐라드냐..." 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제사상 너머 할머니에게 역습을 가했다. "음마마 할머니, 지가 이래 뵈도 대한민국 대중을 상대로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이 됐다니께요. 아 글고 이 제사상의 음식들도 다 그분들이 낸 관람료로 준비한 것이제라!"
나는 지금까지 몇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참여하면서, 꼭 드라마 속에 수수께끼를 삽입시키려고 노력했다. 비교적 최근작인 '달마야 놀자'나 '황산벌'을 보신 분들은 짐작하실 수 있다. 수수께끼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영화 속의 수수께끼는 흥미를 유도하는 기능을 할뿐 아니라 그 영화의 테마나 메시지와 연결되는 요소이다. 정치도 경제도 인생도 세상도 참 답을 모르는 수수께끼 같은 시대이다. 그러나 수수께끼에는 늘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명쾌한 답이 숨어있다.
변변찮은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게 감사하는 뜻에서 수수께끼 하나 낼까 한다. 이건 시중에서 주워들은게 아니고 내가 직접 만든 창작 수수께끼지만, 사실 우리 영화사에서 만들고 있는 영화 '달마야 서울 가자' 속에 나오는 것이다.
도시의 늙은 보살이 산사에서 내려온 젊은 선승(禪僧)에게 내는 화두 같은 수수께끼다. "지금 여기, 물건들과 빈 주머니가 있습니다. 물건에도 주머니에도 손대지 않고 이 주머니를 이 물건들로 가득 채울 수 있겠소?" 힌트. 이 수수께끼는 혼자선 풀 수 없는 것이다.
조 철 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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