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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부패의 전사들](4)경찰청 특수수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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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부패의 전사들](4)경찰청 특수수사과

입력
2004.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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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찰이 일 내겠다"는 놀라움 섞인 칭찬이 부쩍 늘었다. 전직 장관, 국회의원, 예비역 장성 등 예전에는 범접하기 조차 어려웠던 고위층 인사들의 비리를 서슴없이 파헤친 결과다. 경찰의 위상을 이처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배경에는 '경찰 수사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있다.서울 서대문구 미금동 경찰청 청사 본관 옆 후미진 곳에 위치한 4층 건물. 허름해 보이지만 이곳이 경찰의 수사사(史)를 다시 쓰고 있는 특수수사과다. 경찰청에는 총경급이 장(長)을 맡고 있는 30여개의 과(課)가 있지만 유독 특수수사과는 별도의 건물을 통째 사용할 정도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그만큼 경찰내에서 차지하는 특수수사과의 업무 비중이 남다르다는 것을 상징한다. 소속 경찰관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1층 입구에 걸려있는 현판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철문이 가로막고 있어 특수수사과의 수사가 극비 보안 속에 진행중임을 실감케 한다.

총 41명이 첩보수집에서 수사·검거까지

특수수사과는 6개팀 41명으로 구성돼 있다. 경정급 팀장 밑으로 6∼7명씩 5개 팀이 있고, 최근 계좌추적을 전담하는 제7팀이 신설돼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매일 아침 팀별로 진행되는 자체 회의를 시작으로 하루 일과에 들어간다.

회의에서는 대부분 현재 진행중인 수사에 대한 방향 설정 및 각계에서 입수한 첩보에 대한 논의가 주의제로 다뤄진다. 사안의 경중을 가려 팀별로 한 사건씩 맡게 되지만 '큰 건'의 경우 2, 3개 팀이 합동으로 수사한다. 예전에는 청와대나 총리실 사정팀 등 외부기관에서 이첩하는 고발사건이나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하명수사를 맡는게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체 인지(認知) 수사가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 '빅 히트작'으로 평가받는 이원형 전 국방품질관리소장의 군납비리 사건도 3팀에서 입수한 작은 내부 첩보가 단서가 돼 몸통에 이르게 된 경우다. 군 무기 도입과 관련된 각종 첩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유독 이원형씨 연루 소문이 자주 입수되자 이씨 주변부터 조사를 해보기로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먼저 이씨의 부동산과 동산 등 재산 형성과정을 조사하다 타인 명의의 부동산에 이씨가 근저당을 해놓은 사실을 알아냈고, 이에 대한 거래내역을 역추적하면서 차명계좌 10여개를 발견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 수사관은 "차명계좌에서 굵직굵직한 인사들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3팀 전체 직원이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기뻐했다"며 "바로 그런 순간이 수사관들이 업무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이자 긍지"라고 말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천용택 의원을 소환 조사하고, 예비역 장성 2명을 입건하는 한편 국방부 산하 연구소장급 2명 및 방산업체 대표 4명을 구속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수사와 관련한 외압 일체 없어"

특수사사과는 수사관 모집 절차도 다른 부서와 달리 까다롭다. 직무 특성상 지방경찰청이나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통으로 소문난 경찰관이 추천돼 오면 내부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한다. 대개 3∼4년 근무한 뒤 떠나곤 하지만 12년째 특수수사과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도 있다. 관리팀장인 장치암 경위는 그동안 국민당 대선 비자금 사건에서 방송국 PD 수뢰사건, 경기도 나환자촌 폐수 무단방류 사건에다 이번 군납비리 사건까지 대형 사건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장 경위는 "예전에는 윗선의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외압이나 불필요한 눈치보기 따위는 완전히 사라져 그야말로 법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팀별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양상까지 생겨날 정도"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특수수사과는 전·현직 군장성 공사 관련 비리사건 발명의 날 산업 훈·포장 수상 비리사건 용산민자역사 분양비리 사건 공기업 감사 해외연수 빙자 횡령 사건 등 언론에 대서특필된 주요 사건을 처리하면서 상급기관 등을 의식하지 않는 엄격한 법라의 적용으로 경찰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1팀은 이한선 치안감 관련 수사, 2팀은 식품의약품안전청 간부의 거액 축의금 사건, 6팀은 불량 방독면 납품사건 등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언론의 각광을 받게 된 이후 일반인들의 격려 전화는 물론, 첩보성 제보 전화도 급증해 특수수사과는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한때 '정권의 청부 수사팀'이라던 오명을 벗고 명실상부한 경찰의 핵심 수사기관으로 탈바꿈 하고 있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행보가 '경찰판 마니폴리테'의 서막이 될지 주목된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 영욕의 역사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과거 '정권의 사조직' '정부내 사설 정보기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실상 청와대의 비선라인으로 여겨져왔다.

특수수사과는 1972년 김치열 내무부장관의 지시로 설치된 치안국 특수대가 효시다. 이후 76년 치안본부 특수수사1대와 특수수사2대로 분류됐다. 수사1대는 정보수집을 전담했고, 2대는 청와대 하명수사를 맡았다. 출범 때는 고위 공직자나 정권 실세, 대통령 친인척 등 검찰이나 경찰이 직접 다루기에는 미묘한 사안들을 내사해 권력 내부의 기강을 세우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때로는 정치사건에 과다하게 개입, 권력 남용과 과잉 수사로 물의를 일으켜 여론의 비난을 받았고 야당으로부터 '폐지대상 1호'로 지목되기도 했다.

5·6공 때 1대는 청와대 친·인척 관련 비리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2대는 계속해서 청와대 하명수사를 맡도록 했다. 89년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바뀌면서 특수2대는 경찰청장의 지휘를 받는 특수수사과로 변경됐고, 특수1대는 계속 사직동에 사무실을 둔 채 이름만 경찰청 조사과로 바뀌었다.

국민의 정부 들어 옷로비 사건, 한빛은행 불법 대출사건 등과 관련, 권한 남용 및 일부 직원들의 비위 사실이 불거지면서 2000년 10월 경찰청 조사과인 일명 '사직동 팀'은 해체됐고 그 인원과 기능을 수사2대의 후신인 특수수사과가 흡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직동팀의 실질적 지휘책임자인 박주선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구속되고 특수수사과장 최성규 총경은 최규선 게이트에 개입한 혐의가 드러나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사직동 팀의 수장들은 5·6공 시절엔 주로 TK(대구·경북) 출신이, 문민정부 시절에는 PK(부산·경남),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호남 출신들이 자리를 독차지할 정도로 권력과 선이 닿는 경찰내 실세들이 도맡아 임기가 끝나면 승진이 보장되는 '대가'가 주어지기도 했다.

/염영남기자

● 이상원 특수수사과장

"좌고우면하지 않고 엄정한 법 집행으로 경찰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원(47·사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은 3일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반하는 중대 범죄를 척결,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게 특수수사과의 임무"라며 "특히 고위 공직자 및 사회 지도층의 권력형 비리 수사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달 26일 부임한 이 과장은 "특수수사과에는 수사능력이 탁월한 최고의 직원들이 모여 있다"며 "일선 경찰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농부(農夫)처럼 수더분한 인상의 이 과장은 경찰간부후보 30기로 1982년 경위로 임관했다. 22년간 경찰에 봉직하면서 17년을 강력 수사 계통에서만 일했으며, 지난해 인천지방경찰청 수사과장 재직 당시에는 인천 지역 3대 폭력조직 조직원 51명을 일망타진하기도 했다.

그는 98년부터 2000년까지 경찰청 강력계장으로 일했다. 그래서 "경찰청이 고향 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전 7시면 출근해 자정이 될 무렵까지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불을 밝히는 이 과장은 "이제 업무 파악도 마무리된 만큼 첩보수집 활동을 강화하는 등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려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말수가 적은 편이라 때로는 "너무 무게 잡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그는 그러나 경찰 내에서 강단과 추진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이 과장을 요직에 앉힌 것은 윗사람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하라는 수뇌부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천용택 의원 등 군납비리 사건이 용두사미꼴로 흐지부지 되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꿋꿋하게 본연의 일을 할 뿐"이라며 "말이 아니라 실적으로 말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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