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년 2월4일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마리보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763년 같은 도시에서 몰(沒). 마리보는 '벼락부자 농부' '마리안의 생애' 같은 작품 속의 세밀한 풍속·심리 묘사를 통해 근대소설의 바탕을 마련한 작가이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희곡 쪽에 있었다. 코메디이탈리엔 극단이 공연한 '사랑으로 연마된 아를캥'(1720)으로 명성을 얻은 마리보는 그 뒤 40여 편의 희곡을 썼는데, 그 가운데 몇 편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지금까지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귀족 젊은이와 하인이 신분을 서로 맞바꾸어 맞선을 보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 3막 희극 '사랑과 우연의 장난'(1730)일 것이다.'사랑과 우연의 장난'도 '사랑으로 연마된 아를캥'처럼 코메디이탈리엔이 무대에 올렸다. 코메디이탈리엔이란 16세기 중엽 이래 프랑스로 건너오기 시작해 대혁명 무렵까지 활동한 이탈리아 극단들을 개별적으로 또는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은 희극적 인물들의 즉흥적 연기를 특징으로 삼은 콤메디아델라르테를 프랑스 연극계에 도입하며 프랑스인들의 배우조합인 코메디프랑세즈와 경쟁했다. 마리보 작품들의 반 이상은 코메디이탈리엔을 위해 쓰여졌다.
평민 인물들의 매력적 성격 창조나 이야기의 교묘한 구성 외에 마리보 연극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섬세하고 활달하며 멋이 넘치는 대사다. 마리보 이후 이런 말투나 문체를 프랑스어로 '마리보다주'라고 부르게 됐는데, 이 말의 뉘앙스에는 경탄과 경멸이 버무려져 있다. 마리보는 '프랑스의 관객' '시시한 철학자' '철학자의 서재' 같은 잡지를 혼자 집필·간행하며 사회·문화 비평가로도 활동했다. 1인 저널리즘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그는 한 때 '인물과 사상'을 혼자 집필했던 언론학자 강준만씨의 선배였던 셈이다.
고종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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