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혁명의 대명사처럼 통했던 상향식 공천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일괄적으로 '상향식'을 택할 경우 외부인사 영입이 차질을 빚고 경선 후유증으로 본선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게 우선적인 이유다. 정치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해 있고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거의 없는 우리현실에서 공개경선을 해 봤자, 선거인단 동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승복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 정치수준에서 경선 불복자들이 선거 판세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명분은 좋지만 죽기살기식 싸움이 돼 버린 4·15총선에서 1석이 아쉬운 실정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경선제 도입으로 노무현 돌풍을 일으켰던 민주당부터 일찍이 상향식 공천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2002년 지방선거 때 국민경선의 연장선상에서 후보경선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참패 원인이 전적으로 후보경선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요인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 이어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는 후보경선을 잠정 중단해야만 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지난 해 4개 사고지구당 위원장을 공개경선으로 선출했다. 동원시비가 줄을 이었고, 후보 간 맞고소전이 벌어졌다. 지도부는 "경선은 정말로 할 게 못 된다"고 실토했고, 당 정치발전특위는 "상향식 공천과 경선은 최고의 민주적 절차를 담보하는 가치임에도 불구, 한국적 현실에서 금권 매수 경선불복 등 부정적 양태가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열린우리당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구 총수의 30%내에서 상향식 공천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미리 인정했다. 경선을 꺼리는 비중있는 인사 영입을 위해서라는 설명이 뒤 따른다. 완전경선을 요구하는 소장파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또 공직후보자 자격심사위에서 당의 이념과 취지에 비춰 후보가 되기에 부적합한 인사와 명백히 당선가능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인사 등은 경선참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 이처럼 명실상부한 상향식 공천을 택한 주요 정당은 하나도 없다. 여론조사결과를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공천심사위 구성 등을 통해 미비점을 보완한다고 하지만 근본 취지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정치개혁은 정당이 손해를 감내하면서 원칙을 밀고 나가도 될까 말까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손해를 보지 않고 개혁의 명분만 선점하려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