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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건물속 한국소년 감싸안고 최후 벽안의 義人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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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건물속 한국소년 감싸안고 최후 벽안의 義人 있었다

입력
2004.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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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을 구하려고 자기 목숨을 버린 생면부지 외국 청년의 유족에게 죽는 날까지라도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지난해 12월8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업타운극장 붕괴 사고로 발목 골절상을 입은 현지 어학원 유학생 조승우(11)군의 아버지 조영만(43)씨는 날마다 낯선 코스타리카 청년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상념에 젖는다. 그는 사진 속의 외국인을 가리켜 "하늘이 내린 의인(義人)"이라고 되뇌인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30분께 조군은 누나(13)와 함께 극장 옆 요크빌 어학원 건물 컴퓨터실에서 한국에 있는 아버지와의 인터넷 채팅에 열심이었다. 누나가 물을 마시러 옆 좌석을 잠시 비운 사이 학원 수강생이던 27세의 코스타리카인이 교실에 들어왔다. 아우구스토 세사 메히야 솔리스라는 이름의 청년은 본국의 여자친구에게 메일을 보내기 위해 조군 누나의 자리에 앉았다.

조군이 낯선 옆자리의 외국인에게 어색한 눈인사를 보내는 순간, 7층 극장건물이 무너져 옆에 있던 2층짜리 학원 건물을 덮쳤다. 이 건물 1층에 있던 컴퓨터실도 천장과 벽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실내는 이내 아수라장이 됐지만 솔리스씨는 재빨리 조군을 끌어안은 채 책상 밑으로 피신했다.

한국인 12명 등 총 14명의 사상자를 낳은 참사였지만 조군은 잿더미 속에서 사고 발생 1시간30분만에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소방관들에 의해 구조됐을 때 조군은 솔리스씨에게 감싸인 모양으로 안겨 있었다. 그는 조군을 보호하려다 낙하 철골구조물에 머리를 맞고 이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가 됐다. 토론토 인근 병원에 입원한 조군은 이 얘기를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당신처럼 남을 위해 살겠다"는 장문의 감사편지를 죽은 솔리스씨에게 보냈다.

"제 아들은 그와 전혀 모르는 사이였어요. 그러나 그는 우리 가족에게 새 삶을 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조씨는 "솔리스씨가 아니었다면 아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씨는 "항공권을 못 구해 아들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솔리스씨의 부모가 제3자를 통해 '승우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을 때 또 한번 가슴이 무너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일월드컵 때 아들과 함께 터키-코스타리카전을 관람했습니다. 모두들 한국전쟁 참전국인 터키를 응원했는데 아들만 유독 코스타리카를 응원하더군요. 이제 생각해보니 다 그런 인연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아들이 솔리스씨의 몫까지 대신할 수 있도록 잘 자라주길 기대한다는 조씨는 "조만간 아들과 함께 코스타리카를 방문해 솔리스의 부모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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