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작은 나라 요르단은 서양문명의 양대 축인 헤브라이즘(기독교문명)과 헬레니즘(그리스·로마문명) 문명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곳이다. 출애굽(出埃及)에 성공한 선지자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38년의 시간을 보낸 곳이고,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현장이기도 하다. 끝없이 동쪽으로 세력을 뻗치던 로마는 데카폴리스(Decapolis)라는 이름으로 10개의 위성도시를 만들었고, 요르단에 제라쉬, 필라델피아(지금의 암만), 움 카이스 등 3개의 유적을 남겼다. 이스라엘, 이집트와 함께 대표적인 기독교 성지순례지로 손꼽히는 요르단.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곳이어서 볼거리가 많지만 정작 요르단 관광의 으뜸은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페트라(Petra)에 내줘야 한다.
'영원한 시간의 절반 만큼이나 오래된, 장밋빛 붉은 도시.'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은 페트라를 이렇게 극찬했다.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 페트로(petro)에서 따왔다. 말 그대로 바위도시이다. 붉은 빛이 감도는 화강암과 사암으로 이뤄진 이 도시는 거대한 바위계곡을 지나면 나타나는 유적들, 동굴을 활용해 만든 왕가의 무덤 등이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이어져 보는 이의 눈을 압도한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서남쪽으로 150㎞ 떨어진 이 도시 여행은 매표소에서 시작된다. 길을 가는 도중 만나는 영혼의 무덤, 오벨리스크 무덤 등은 페트라유적의 맛보기이다. 1㎞ 가량 걸으면 갑자기 동굴처럼 생긴 협곡이 나타난다. 시크(siq)이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사이로 폭 3∼4m의 길이 이어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바위가 닫혀버릴 것만 같다. 이런 길이 2㎞ 정도 계속된다.
협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틈 사이로 페트라 관광의 하이라이트 '알 카즈네(Al Khazneh)'가 살포시 모습을 드러낸다. 기원전 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왕릉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폭 30m, 높이 43m의 규모로, 코린트양식의 기둥 6개가 떠받치고 있는 로마식 건축물이다.
끝도 없을 것 같은 협곡을 나와 마주치는 알 카즈네의 장관은 관광객들의 눈을 휘어잡는다. 처음에는 붉은 빛이 감돈다. 태양이 구름속으로 들어가니 노란색이다. 태양이 비스듬히 비추면 푸른 빛도 나타난다. 원래 색깔을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 같은 유적을 만들었을까. 온갖 의문이 끊이질 않는다.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페트라에 정착한 것은 기원전 6세기. 로마의 침략으로 자리를 내줘야 했던 1세기까지 700년 동안 이 곳에 신비의 도시를 건축했다. 그러나 로마가 점령하면서 이 곳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6세기에 발생한 지진으로 뇌리에서 잊혀졌다. 1812년 스위스출신의 탐험가 요한 루드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이 곳을 다시 발견하기 까지 1,300년이 걸렸다.
사람들은 이 곳에 파라오왕의 보물이 숨겨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알 카즈네이다. 보물창고라는 뜻이다. 중동은 물론 인근 서양에서도 이 곳에 가면 엄청난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태인 출신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서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마셨던 성배(聖杯)를 숨겨둔 배경으로 이 곳을 택했다. 시크를 지나 알 카즈네 앞에 도착한 인디아나 존스 일행은 영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원탁의 기사가 보관중인 영원한 삶을 주는 성배를 찾는다. 영생을 얻는 것만큼 더 귀중한 보물이 어디 있으랴. 페트라는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유명해졌다. 아랍인이 만든 유적에 각 나라의 신화와 전설을 차용, 새로운 미국의 신화를 만들었다고 할까.
끝인가 했더니 시작이다. 알 카즈네와 더불어 페트라의 대표적인 유적지 데이르(Deir, 수도원)로 가는 길은 대규모 무덤군으로 이뤄진 왕가의 계곡이다. 공중목욕탕,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등이 펼쳐진다. 곳곳에서 발굴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1시간 남짓 평지를 걸은 뒤 계단과 마주쳤다. 800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침 당나귀를 모는 현지인이 계단을 내려온다. 잠시 흥정을 한 뒤 성인 키만한 당나귀에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당나귀의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계단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당나귀와 한 몸이 될 수 밖에 없다. 30분 가량 오르니 데이르 입구이다. 알 카즈네와 형태는 유사하지만 규모가 큰 수도원이다. 데이르와 마주하고 있는 산 정상에 올라 페트라의 전경을 본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계곡은 한번도 상상한 적이 없는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산 정상 반대편 너머는 이스라엘 땅이다. 중간쯤에 모세의 형 아론이 무덤이 보인다. 그 아래로 해가 떨어진다. 장밋빛 붉은 도시는 해와 함께 사라진다.
/요르단=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찾아가는 길
이전에는 요르단으로 가려면 대한항공을 이용,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갈아타고 가는 방법이 유일했으나 카타르항공(02-3708-8560)이 최근 카타르를 거쳐 요르단으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면서 여행이 한결 편해졌다.
목·일요일 오후 9시50분 인천공항을 출발, 상하이를 경유, 카타르에 도착(13시간 소요)하고 수요일에는 오전 3시에 출발하는 직항편(11시간 소요)이 운항된다. 왕복항공권은 100만원. 요르단까지는 4만원을 추가한 104만원이면 된다.
화폐단위는 디나르. 1디나르는 한화로 1,700원 안팎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으며 지중해성 기후와 사막성 기후가 혼재해 있다.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대다수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통용된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정치적으로 안정돼 치안상태도 양호하다.
면적은 8만9,000㎢으로 남한보다 조금 작다.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도이며 10%는 기독교인이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만큼 돼지고기는 먹지 않으며 양고기를 주식으로 한다. 한국식당이 없기 때문에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것에 대비 김치, 고추장, 김 등을 준비하면 좋다.
고려여행사(02-771-3111), 여행가는 날(778-2700), 천지항공(703-7100) 등은 요르단, 이집트, 이스라엘을 둘러보는 8박9일짜리 상품을 189만원에 판매한다.
■온천폭포 "마인" 몸 둥둥뜨는 死海 이색체험 즐비
요르단은 이색 체험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과 경계에 있는 사해에서 즐기는 수영과 머드팩, 5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온천폭포 등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사해는 엄밀하게 말하면 바다가 아니다. 요르단강을 수원으로 하는 거대한 호수다. 폭 15㎞, 길이 75㎞. 매일 700여만톤의 물이 사해로 유입되지만 흘러나가는 물은 전혀 없다. 대신 증발한다. 그래서 염분이 진해졌다. 일반 바닷물의 소금 성분이 6∼8%이지만, 사해는 24∼32%에 달한다. 생물이 살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死)의 바다(海)이다.
수천년 전에는 해발 200m 이상까지 물이 차 있었지만 계속 물이 줄어들어 지금은 해발 마이너스 400m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사해의 특징은 염분이 많이 굳이 헤엄을 치지 않아도 몸이 둥둥 뜬다. 피부병이나 류마티스 등의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누워서 책 읽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누워서 떡먹기 만큼이나 쉽다. 하지만 절대로 물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소금농도가 짙기 때문이다. 사해에서의 또 다른 즐길 거리는 바닷물속에 있는 진흙으로 하는 머드팩이다. 다양한 유기물질이 함유돼있어 피부미용에 큰 효과가 있다. 진흙을 포장한 머드팩 제품도 판매된다.
사해로 가기 전 해발 마이너스 200m 지점에 위치한 마인온천은 높이 50m에서 떨어지는 온천폭포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흔히 볼 수 있는 수락폭포에 온천이 더해진 셈이다. 섭씨 50도 가량의 온천을 온 몸으로 맞는다. 머리와 등에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물을 맞다 보면 어느새 피로가 확 가신다. 폭포 안쪽에 형성된 동굴에는 성인 1명이 앉을 수 있는 자연온천들이 형성돼있다. 겨울밤에도 추위를 느낄 수 없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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