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카드빚·실직·이혼에 보육시설 맡긴 후 "감감 무소식"/"엄마·아빠 어디에" 天倫이 무너진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카드빚·실직·이혼에 보육시설 맡긴 후 "감감 무소식"/"엄마·아빠 어디에" 天倫이 무너진다

입력
2004.02.03 00:00
0 0

이모(4)양은 태어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어린 남동생과 함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부모에 의해 서울 관악구 남현동 상록보육원에 맡겨졌다. 부모가 1억원의 카드 빚을 져 가정이 풍비박산했기 때문. 아이들을 맡긴 뒤 어머니는 집을 떠나 경기 수원시에서 아파트 경비원 생활을 시작했고 아버지는 행적이 묘연하다. 남매가 어머니의 얼굴을 본 것은 설날인 지난달 22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남매는 상록보육원이 마련한 재활생활관 1층 '엔젤방'에서 지난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4명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엄마 품을 떠올리며 외롭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지난달 28일 오후 4시 상록보육원에는 기저귀를 차고 있는 어린아이와 유치원생, 초등학생들로 가득했다. 최근 들어 카드 빚과 실직 등으로 어린 자녀들을 보육원 등에 맡기는 부모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78명이 생활하는 이 보육원에만 지난해 27명의 어린 아이들이 새로 맡겨졌다. 대부분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어린이와 보육원에 약속하지만, 실제로 다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는다.

이날 2층 독서실에서 만난 윤모(8)군은 2년 전 부모가 생활고 끝에 이혼하면서 보육원 생활을 시작했다. 제주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 대신 고모만 가끔 찾아올 뿐 언제 부모가 데려갈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 윤군은 웃음을 잊은 채 '고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연신 전화기를 찾아다녔다.

보육원에 버리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 아예 여관이나 놀이공원에 아이를 팽개치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2일 오전 6시 50분께는 광주 서구 광천동 H여관 101호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투숙했던 김모(6)군이 버려진 채 발견됐다. 김군 곁에는 김군의 생년월일과 '아들에게 미안하며 좋은 부모 만나 잘 크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힌 메모지가 발견됐고 아버지는 아들 곁을 떠나기 전 경찰에 전화를 걸어 "생활이 너무 어려워 아들을 버리고 가니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군을 보호시설로 넘기고 아버지를 찾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2년 버려진 요보호아동은 1만57명. 외환위기 이후 늘어나기 시작해 2001년 1만2,086명에 이어 계속 1만명을 넘었다. 2002년 요보호아동의 절반 정도인 4,263명이 경제불안 등의 이유로 버려진 아이들이다.

아동복지시설 등에는 "생활이 힘들어졌는데 아이를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상담전화가 하루 수십통씩 걸려오고 있다. 경제사정이 좋아질 때까지 임시로 아이들을 맡기고 싶다는 것. 상록보육원 최성수 사무국장은 "부모가 모두 사망한 고아가 맡겨지는 사례는 1980년대 이후에는 거의 없으며,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나 친척 등과 연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버려지는 아이는 늘고 있는데 극심한 경제난으로 입양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국내입양된 아이는 521명으로 2002년 552명보다 줄었다. 동명아동복지센터 김연희 사무국장은 "나중에 찾아오겠다는 약속은 못 지키더라도 연락이라도 계속해야 하는데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는 부모가 많다"며 "엄마에게 연락해 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부모들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