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8명의 여인들/고상한 미인들 한꺼풀 벗기니 탐욕스런 악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8명의 여인들/고상한 미인들 한꺼풀 벗기니 탐욕스런 악녀

입력
2004.02.03 00:00
0 0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8명의 여인들'은 세 번 놀라게 한다. 프랑스 영화사의 여신들만 불러모은 듯한 여배우 명단이 우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쉘부르의 우산' '인도차이나' 로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뽐낸 카트린느 드뇌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에서 격렬한 내면의 욕망으로 나이 어린 남제자를 학대하는 피아노 선생을 맡았던 이자벨 위페르, '스위밍 풀'에서 되바라진 10대 소녀의 매력을 발산한 뤼디빈 사니에 등이 그 명단이다. 20대의 유망주부터 87세의 할머니 역 다니엘 다리외까지 각 세대의 대표미인들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프랑스 미의 여신들이 펼치는 향연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면 이 고상한 미인들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악녀라는 데서 두 번 놀란다. 성탄절을 함께 하기 위해 대가족이 모인다. 폭설에 갇힌 외딴 별장이지만 외할머니부터 손녀까지 모인 자리는 오붓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기 방에서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되면서 의심과 불신은 순식간에 집안을 냉각시킨다.

막내딸(뤼디빈 사니에)이 어머니(카트린느 드뇌브)를 향해 "범인은 주로 상속자"라며 어머니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등 8명의 여인들은 모두 서로가 범인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녀 루이즈는 간밤에 개가 짖지 않았다고 아는 체를 하다가 의심을 받고, 어머니는 침대 맡에 급히 어디론가 떠나려는 듯 가방을 숨겨둔 것이 발각된다. 언니는 아침에 집에 온 게 아니라 전날 밤에 도착해 아버지 방에 몰래 들어갔다는 게 드러난다.

다리가 불편하다면서 늘 휠체어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느닷없이 일어나 걸을 때부터 관객은 슬슬 이 가족이 매우 문제적인 가족임을 깨닫는다. 엄마와 이모(이자벨 위페르)는 멱살잡이를 하고, 엄마와 고모는 서로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고 말다툼을 벌이다가 끝내는 머리끄댕이를 잡고 바닥을 뒹군다.

교양 넘치는 미인의 내면엔 탐욕이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이들 8명의 여인들에게선 상상하지도 못할 추악한 과거가 드러난다. 누가 과연 범인인지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8명의 여인들'은 프랑스 중산층 여인들이 짙은 화장과 고급스런 의상으로 가렸을 뿐 가족애나 교양, 예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속물임을 까발린다. 그럼에도 이들 악녀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여인들은 사건의 마디마디마다 춤을 곁들여가며 감미로운 샹송을 부르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다가도 화해의 키스를 나눈다. 여기에 세번째 놀라움이 있다. 스릴러에 웬 뮤지컬? '시카고' 같은 떠들썩한 재미는 아니지만 이런 독특한 뮤지컬 양식도 여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한몫한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더글라스 서크 감독이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등에서 보여준 1950년대식 고색창연한 미장센을 들여와 여인들의 신비감과 우아함을 과장되게 보여준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을 보는 듯한 긴박한 스릴러물임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음악, 미술, 의상 등 영화가 세심하게 마련한 장치 덕택이다.

동성애 등 섹스 코드를 스릴러 그리고 코미디와 함께 잘 버무렸지만 마지막 장면은 조금 심심한 맛이다. 2002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과 집단연기상을 탔다. 원제 '8 Femmes.' 2월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