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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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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늑대

입력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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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먼 옛날부터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100만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늑대는 인간이 번성하기 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인한 동물이었다. 인간이 늘어나면서 늑대의 생활터전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인간과 늑대의 충돌의 역사가 시작된다.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공존이 가능했다. 인간은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들을 공격했지만 철저한 팀워크, 날카로운 관찰력, 무리에 대한 충성심,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술, 그리고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인내심 등 늑대무리가 지닌 부러운 덕목 때문에 한편으론 늑대를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늑대의 덕목들이 늑대무리의 살육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중세 유럽의 지배자들이 뛰어난 전사의 품격을 지닌 늑대와 자신을 동일시, 늑대와 개의 교배를 통해 늑대개를 만들어내 궁정에서 키웠다. 이 과정에서 사나운 잡종이 탄생, 우리를 탈출해 가축과 사람을 공격했고 사람들은 이를 야생늑대의 소행으로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인간의 일방적 늑대 살육전은 시작되었고 늑대는 모든 사악한 것의 상징으로 변했다. 인간의 욕심과 실수 때문에 늑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멸종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 늑대의 사회구조는 인간의 그것과 흡사하다. 늑대 연구가들은 늑대무리가 지닌 덕목에 감탄, 늑대를 인간이 본받아야 할 '아름답고 신비한 생명체'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늑대무리는 가장 유능한 사냥조직이지만 성공률은 10%에 불과하다. 그래서 늑대는 늘 굶주려 있다. 그렇다고 배고픔 때문에 미친 듯 살상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늑대들은 오로지 눈앞에 놓인 과제에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많은 실패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어 사냥기술을 연마해간다. 인간이 실패라고 부르며 부끄러워하는 것을 늑대들은 지혜로 변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원시인들의 그림에 늑대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 서울대공원에서 광릉수목원으로 옮겨지던 중 나무우리를 뜯고 탈출한 중국산 7년생 회색늑대가 탈출 34시간 만에 마취 총을 맞고 포획됐다. 달리던 트럭에서 뛰어내려 관악산 숲으로 사라지는 늑대의 모습은 일상의 우리 속에 갇혀 사는 현대인에겐 색다른 충격이었고 잊어버린 야성의 발견이었다. 인명피해를 걱정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내심 잡히지 않고 야생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기대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독점해버린 도회에 늑대가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었는가 보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그립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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