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쁜 기억은 오래 남을까. 미국의 시인 게리 스나이더는 '나쁜 기억이란 목구멍에 걸린 토사물 같다'고 했다. 나쁜 기억의 잔상이 좋은 기억의 환상보다 더 강렬한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억압적인 학창시절을 보낸 30, 40대를 위한 청춘의 진혼곡이라 부르면 좋을 '말죽거리 잔혹사'. 영화의 절반 이상이 교실 장면인데, 교실 뒤편 칠판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이사장님 묘소 벌초 당번 ○○○'. 유하 감독은 자신이 다니던 서울 상문고에서는 교정에 있는 이사장의 묘소를 학생들이 번갈아 벌초를 했었다고 말했다. '두사부일체' (감독 윤제균), '말죽거리 잔혹사'의 감독은 둘 다 상문고 출신으로 두 영화 모두 학교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후 상문고는 큰 파동을 겪으며 정상적인 학교가 됐지만, 상문고가 그리 문제였더냐고 따지지는 말자. 영화 속 상문고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억압적인 학교의 상징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악몽과 같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도 되고, 상품도 된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다혈질 생물 교사가 한 분 있었다. 그녀는 "눈 감아라" 한마디 한 후, 2∼3분간 교실을 돌다 지휘봉으로 학생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총알처럼 일어나면 "화재 이후 식물군 형성 순서를 외워 보라"고 하명하신다. 당황한 학생은 알던 것도 잊어먹고 우물쭈물하고, 그녀는 차례차례 뒷사람을 불러세운다. 옆사람은 안심이다. 그녀의 호출은 결코 '그 옆의 옆' 식으로 변칙하지 않는다. 한 다섯 명쯤 일어나면 그녀는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노"라며 맨 앞의 소녀를 뒤로 밀어 버리고, 소녀들은 책상을 껴안고 뒤로, 뒤로 넘어간다. 그녀는 도미노 애호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도 시간이 지나면 좌중의 배꼽을 잡게 하는 '일화'가 될 뿐이다. 힘든 시절을 앙다물고 보냈던 유하 감독이나 윤제균 감독도 결국 학교 얘기로 '발딱' 일어서지 않았는가. 그러니 나쁜 기억도 시간으로 숙성시키면 슬픔이 탈색된 '엽기'로 남는다.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다며 괴로워하지 말자. "당신은 형편없는 사람이군요"라는 식의 얘기는 하지 말자. 이 말이면 충분하다. "영원히 기억에 남으실 분 같아요. 헤헷." 남을 괴롭히면서도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것이 그런 류의 사람들 특성임을 감안하면, 이 말을 찬사로 들을 것이다. "녀석…" 하면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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