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저 기러기떼가 왜 V자 형태로 날아가는 지 아십니까? 똥벼락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철새는 날면서 볼 일을 봅니다. 만일 나란히 날다가 앞의 새가 갈긴 배설물을 맞게 되면 눈도 못뜨고 숨도 쉴 수 없어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화면 가득 펼쳐진 철새의 이동 모습을 보며 조류학자인 윤무부(63)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구수한 입담을 쏟아냈다. 윤교수는 3월 초 출시될 '위대한 비상' DVD의 음성해설을 맡았다.2001년 개봉했던 '위대한 비상'은 프랑스의 자크 페렝 감독이 3년 동안 36개국을 돌며 철새 35종의 모습을 담은 수려한 영상의 자연 다큐멘터리. 그런데 TV 다큐멘터리와 달리 음성해설이 전혀 없고 영상과 음악만 나오기 때문에 새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으면 지루해지기 쉽다.
국내판 DVD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윤교수의 음성해설을 곁들였다. 윤교수는 단조로운 영상에 머물뻔 했던 작품에 해박한 지식과 구수한 입담으로 맛깔스런 양념을 쳐 1시간 30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만든다.
"저 두루미 좀 보세요. 왜 날아가다가 밭에 머무는 지 아십니까? 저 곳을 이동할 때면 할머니가 늘 먹이를 줬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가 1년 후 어김없이 들르는 겁니다. 저렇게 기억력도 좋고 똑똑한데 머리 나쁜 사람보고 과연 새대가리라고 욕할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새는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안다녔는데 기가 막히게 지리를 잘 압니다. 또 피자,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음식은 안먹습니다."
새박사인 윤교수의 해학적인 입담은 실제 생활에서 나온다. 그는 대학원 시험 전날,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잘 잊어버린다'는 옛 말을 실험하기 위해 실제로 까마귀를 잡아 먹은 적도 있다. "까마귀 고기 먹어도 머리 나빠지지 않습니다. 시험만 잘 봤습니다. 고기 맛은 약간 새콤하더군요. 물론 정력하고도 상관없습니다."
다소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의 행동은 어린 시절 오랜 자연 관찰에서 비롯됐다. 거제도 장승포가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소, 염소, 토끼 등을 기르며 동물의 습관을 눈여겨 봤다. "동물을 향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새로 옮아갔고 오늘날 새 박사가 됐죠."
어려움도 많았다. 쌍안경과 카메라, 녹음기 등을 챙겨 들고 새를 쫓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 간첩으로 곧잘 오해를 받았다. "대공 기관에 숱하게 끌려가 조사도 받았지요." 그렇게 모은 1,400개(700시간)의 베타테이프, 1,000시간 이상 분량의 오디오 테이프, 3,000여장의 사진 자료가 한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들 윤종민(31)씨도 미국 미시건대 대학원에서 생물진화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새를 연구하고 있다.
윤교수의 꿈은 아들과 함께 연내 새 전문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하고, 그 동안 모은 자료를 DVD로 내놓는 것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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