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란 무엇인가'(데이비드 F 포드 지음, 강혜원 등 옮김), '코란이란 무엇인가'(마이클 쿡 지음, 이강훈 옮김), '푸코와 문학'(시몬 듀링 지음, 오경심 등 옮김)….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들춰보지도 않을 만큼 난해한 내용, 표지엔 저자 사진 한 장 달랑 넣은 단순한 디자인으로 일관된 출판사 동문선의 '문예신서' '현대신서'시리즈는 사흘이 멀다 하고 한두 권씩 나오고 있지만 판매와 거리가 멀다. 문예신서는 1988년, 현대신서는 98년부터 선보이고 있다.신성대(50) 동문선 사장은 20년간 이처럼 '안 팔리는 책'을 만들어온 괴짜 출판인이다. 84년 '뭣 모르고' 출판사를 인수한 후 지금까지 500종 가까이 책을 내면서 그에게 남은 건 수 억원의 빚과 팔리지 않은 수십 만 권의 재고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표정은 밝기만 하다.
'자선사업을 하는 것인가'란 물음에도 "이윤 따지려면 진작에 배추장사로 나섰다. 웬만한 책은 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래도 책을 엄선해서 낼 수 있지 않느냐고 하자 '태산은 티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으로 응답한다. "팔릴 만한 책을 골라서 내는 것은 자기 집에 정원을 꾸미는 것에 불과해요. 보기 좋은 정원수를 가꾸기보다는 자연을 흉내내고 싶다고 할까요."
그의 뚝심과 옹고집에 원고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판매 걱정을 해준다고 한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 중에 99%가 초판만 찍었고, 그것도 팔리지 않아 대부분이 창고에 쌓여 있으니 그럴 만하다. 일산에 있는 60평짜리 농가 창고 3개 동에 보관된 책들은 관리비만 한 달에 270만원, 1년이면 3,000만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소도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는다'고 했던가. 그 동안 많은 책을 내다보니 베스트셀러도 있긴 있었다. 2000년 처음 출간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1∼3)는 30만부가 팔려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려운 책들을 다루다 보니 답답해서 머리 식히려고 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이 끝나고도 6개월이나 묵혀두었고 초판도 2,000부만 찍었죠."
여기에 소설가 이외수씨의 작품 '말 더듬이의 겨울수첩'을 비롯해 10여권이 그의 빈 주머니를 그나마 채워주고 있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가족들과 함께 상경한 신 사장은 신림동 판잣집에서 새벽엔 신문배달, 밤엔 지게를 지고, 주말에는 소와 돼지를 키우는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만큼 고생도 실컷 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해양대 부설 해양전문학교를 졸업, 7년간 외항선 기관사로 세계를 누비며 돈을 모아 출판사를 냈다.
서울 마장동 전셋집에서 살다가 최근에야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다는 그는 가난이 지긋지긋하기도 할 법한데 여유만만하다.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도 중학교 때부터 배운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1년에 2,000만∼3,000만원씩 지원금도 내고 있다. IMF 외환위기 후에는 회사 사정이 더 어려워졌지만 출판에 대한 열정은 더욱 뜨겁다. 지난 해에는 86권을 냈는데 올해에는 100권, 앞으로 하루에 한 권씩 내는 게 목표이며 조만간 각종 사전 편찬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그래서 그는 사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작업에 방해를 받을까 봐 출판사 간판도 없애버렸다.
"'동문선' 책들은 기초 인문도서인 1차 저작물입니다. 이런 분야의 저작이 쌓여야 인문학이 살고 그래야 출판이 발전합니다. 요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이런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3차 저작물입니다. 언론도 대중들의 눈높이에만 맞추지 말고, 세상에 어렵고 복잡한 사고를 하는 분야도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사무실 한 켠에 적힌 '꾸준함을 이기는 경쟁자는 없다'는 글귀가 동문선의 꿋꿋한 자세와 신념을 함축하고있다.
/글·사진 최진환기자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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