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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공포 다시 확산/농가 현지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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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공포 다시 확산/농가 현지 르포

입력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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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같은 닭 오리 생매장한 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나앉을 판입니다." 조류독감(고병원성 가금 인플루엔자)이 농심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지난해 말 전국의 닭 오리 등 축산농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조류독감이 최근 천안 등에서 재발하고 동남아에선 인체 감염으로 사망자가 늘고 있다는 끔찍한 소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 애써 기른 자식을 묻고 희망을 묻고 삶을 묻은 축산 농민들은 재기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친 조류독감 공포에 의지마저 꺾인 상태다. 농촌 실업자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빚 독촉에 시달리고 가정파탄까지 벌어져 '생이별 농가'까지 속출하고 있다.도살처분, 가정파탄, 생이별…

2일 오전 충북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의 한 오리 농가. 사육농 이응석(65)씨가 악취에 찌든 폐허나 다름없는 축사를 보자 풀썩 주저 앉았다. "자식처럼 기르던 오리 9,000마리를 땅에 묻었어요. 애들 대학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음성 지역은 지난달 17일 가축이동 제한 조치가 풀려 오리를 새로 들여올 수 상태. 하지만 이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수십 톤의 오리 분변과 썩은 짚이 어지럽게 쌓인 축사를 말끔히 치운 다음 새끼 오리를 들여와야 하는데 보상금 1,800만원으론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료비와 사료 값은 10%나 올랐다. 무엇보다 조류독감이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새끼 오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씨는 "마땅한 농사거리도 없는데…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오리 1만6,800마리를 도살처분한 박재윤(57·충남 천안시 직산읍)씨 부자의 텅 빈 오리 축사는 약탈이라도 당한 듯 짚과 흙이 널브러져 있고 코를 찌르는 악취로 숨 쉬기가 버거울 정도. 박씨는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다. 빚더미에 올랐는데 어떻게 다시 시작하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남쪽 사정도 다르지 않다.

닭 7만 마리를 잃은 전남 나주의 김현순(43)씨는 "공과금 낼 돈이 없어 전화는 물론 TV마저 끊긴 상태"라고 울먹였다. 전남 함평군 박석훈(48)씨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부동산 1,500평이 압류에 넘어갔다"고 했고, 강진군 김모(38)씨는 "아이들 유치원 보낼 돈도 없어 아내와 다툼이 잦았는데 결국 이혼소송 중"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조류독감이 쓸고 간 육계 가공업체 위탁 농가의 처지는 최악이다. 충북 음성의 안순헌(46)씨는 "생계안정자금은 조금 받았지만 조류독감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대부분 농가가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차라리 조류독감이라도 걸렸으면"

화를 피한 농가들은 더욱 죽을 지경이다. 가격 폭락과 소비 위축에다 사료 값 인상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차라리 당하는 게 맘 편하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충남 천안의 김남옥(44·여)씨는 건강하게 사료를 쪼아먹고 있는 닭과 창고에 수북이 쌓인 계란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계란 값이 조류독감 재확산으로 75원에서 60선으로 곤두박질쳤기 때문. 전남 함평의 김종현(46)씨는 "1주일 후면 오리 1만6,000마리를 출하하는데 조류독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도대체 뭘 해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하다"고 가슴을 쳤다. 기댈 곳 없는 닭 오리 농가들은 "최소한 생계유지라도 할 수 있게 재해지역 선포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힘겹게 주문하고 있다.

/전국종합

닭 농가·외식업계 피해 6,700억

지난해 12월 국내 조류독감 발생으로 감소현상을 보이다 겨우 회복기미를 보이던 국내 닭고기 소비가 설날 이후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최근 매출은 전년 대비 최고 70% 가량 감소해 국내 양계산업의 생산 기반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지난해말 국내 최대 닭고기 가공업체인 하림은 30%, 마니커는 25%가량 매출이 감소했다. 올들어 회복세를 보이던 닭고기 소비는 설날이후 태국 베트남 등에서 조류독감으로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다시 급감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등 할인점의 경우 지난해 12월 이후 닭고기 매출이 전년보다 65∼70% 가량 줄었다. 생닭 가격은 지난해 말 이후 계속 하락해 1㎏ 당 원가 1,150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300∼400원으로 떨어졌다.

업계는 국내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달 말까지 양계 산업의 피해액이 모두 6,789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액은 양계농가 1,265억원, 외식업체 3,940억원, 가공(도계)업체 556억원, 사료업체 1,028억원 등이다.

200여 개에 이르는 닭고기 외식업체들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 업체들의 매출은 최근 2∼3일 사이 적게는 60%, 많게는 80%까지 떨어졌다.

국내 닭고기 산업이 최악의 위기를 맞자 닭고기 외식업체들은 정부에 조류 독감의 감염 원인 및 경로를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게 인식시켜 줄 것을 공식 요구했다. 'BBQ'를 운영하는 (주)제너시스 윤홍근 회장은 "조류독감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호흡기나 배설물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인데 살코기를 먹어도 감염되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급격한 닭고기 소비감소로 생산 기반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사태가 6개월이상 계속될 경우 양계산업의 피해액은 2조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사람끼리 전염 가능성" 국내대책

국내에서는 아직 조류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사례도 발견되지 않아 아직 인간 대 인간 전염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나 문제는 우리나라가 철새 도래지라는 점이다. 조류 대 인간, 인간 대 인간 등 모든 경로의 전염을 배제할 수 없는 변이 바이러스를 가진 새들이 겨울마다 우리나라로 오게 되기 때문이다. 강력한 전파성을 가진 조류독감 감염 철새가 상륙할 경우 광범위한 인간방역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엄청난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제 1,000만명분을 비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국내 제약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타미플루' 등 4∼5종의 항바이러스제제 재고 물량은 현재 2만명분. 더욱이 대량감염 가능성에 따라 전세계가 항바이러스제제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여 올 겨울은 물론이고 다음 겨울시즌(11∼2월)에도 100만명분 비축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에 필요한 1,000여억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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