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시골 극장에서 형과 영화를 자주 보곤 했다. 영화에서 야한 장면이 나오면 갑자기 형은 내 눈을 가렸다. 동생의 '정서적 안정'을 지켜주고자 그런 행동을 했을 형에 대해 나는 별로 감사하지는 않았지만 얌전히 따라야만 했다.요즘 경범죄 처벌법을 개정해 과다 노출은 아예 처벌 기준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여름에는 노출이 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청소년 보호법에 의하면 청소년의 정신적 건강에 해가 되거나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을 저해하는 내용은 청소년에게 보여주지 않도록 돼 있다. 만약 청소년 유해 매체물을 청소년에게 보이면 누구든지 관련 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 그런데 이제 과다 노출이 경범죄의 처벌 대상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물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현행법대로라면 앞으로는 자기 몸의 극히 일부분만을 가린 채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은 비록 청소년들의 시선을 끌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지만 그런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영화나 디지털 컨텐츠는 청소년들에게 금지될 것이다. 그러한 차별은 지극히 불공평할 것이므로 청소년 보호법을 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신체 중요 부분의 노출은 청소년 보호 차원이 아니라 음란죄 차원에서 성인 대상이라도 금지되고 있다. 쉽게 말해 앞으로 신체의 과다 노출을 어느 정도 허용한다면 표현물의 등급에 있어서 청소년 유해 매체물 기준도 수정이 불가피하며 성인과 청소년을 같은 잣대로 재야 할 것이다.
하긴 요새 청소년들은 알 것 다 알고 볼 것 다 본다고 한다. 그러니 성인물을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여 청소년에게 유통시키지 못하게 한다는 지금의 제도가 그다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의 이메일과 핸드폰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올 엽기적인 성인물 광고의 홍수를 생각한다면 누구든 자녀의 정서적 상태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앞으로 굳이 과다 노출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청소년은 아예 쳐다보지 말라는 뜻으로 미인대회에 나온 후보처럼 가슴이나 허리에 '19세 이용가' 표시를 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번 여름에 속옷만 겨우 입은 사람들로부터 우리 아이의 정서를 보호하려면 나도 길거리에서도 아이의 눈을 가끔 가려야 할 것인지….
김 형 진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 교수·국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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