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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倭 교류관계 입증 "열쇠" 칠지도 4년만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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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倭 교류관계 입증 "열쇠" 칠지도 4년만에 공개

입력
2004.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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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일 관계사에서 백제와 왜의 밀접한 교류를 입증하는 칠지도(七支刀)가 일본의 나라(奈良) 국립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야마토(大和)의 신들과 미술―칠지도와 이소노카미(上石) 신궁(神宮)의 신보(神)' 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4일 개막, 8일까지 열리고 있는 특별전에서다. 이소노카미 신궁의 소장 유물을 소개하는 자리인 이 특별전에서 나무상자에 담긴 칠지도는 전시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유물이다.나라 현 텐리(天理) 시의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돼온 칠지도는 일본 국보이며, 신성한 보물이라 하여 평소 외부에 보이지 않는다. 매년 연초 신사 별로 돌아가면서 소장 유물을 공개하는 특별전이 열릴 때만 바깥 나들이를 한다.

칠지도의 공개는 2000년 도쿄국립박물관 이후 4년 만이며, 나라 시가 속한 관서 지방에서는 1993년 교토박물관 전시 이후 11년 만이다.

길이 74.8㎝의 쇠칼인 칠지도는 양쪽에 나뭇가지 모양의 작은 날이 세 개씩 어긋나게 솟아있고 몸통 앞뒷면에 세로로 총 61자의 금 상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실물로 본 칠지도의 명문은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거나 정확한 판독이 어려운 글자 11개 외에 나머지는 맨눈으로도 읽을 수 있는 상태였다.

바로 이 명문의 해석이 한·일 고대사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다. 특히 뒷면에 새겨진 '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가 문제다. "백제 왕세자가 왜왕 지(旨)를 위해 이 칼을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해 보여라"는 뜻이다. 상당수 일본 학자들은 이 칼이 '일본서기'(日本書記) 신공황후기에 나오는 '백제왕이 칠지도를 바쳤다'는 기록의 그 칠지도라고 보고, 4세기 후반 일본이 한반도의 가야 지방을 정복하고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 설의 근거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에 월북 학자 김석형(1915∼1996)이 백제의 하사품 설을 제기해 기존 해석을 뒤집은 뒤부터 이 칼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최근에는 칠지도를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무렵 백제가 왜에게 대등한 입장에서 준 외교적 선물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일 고대 관계사의 화두가 되고 있는 이 칼을 직접 보려고 한국 학자들이 다녀가고 국립경주박물관 부설 박물관대학 수강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오는 등 이번 특별전은 한국 관계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가지타니 료지(梶谷亮治) 나라국립박물관 학예과장은 "개막일인 1월 4일 입장객이 1,000명을 넘었고, 1월 26일 열린 칠지도 강연회도 청중이 몰려 좌석 200개 외에 보조석 50개를 더 마련해야 했다"고 전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칠지도 외에 한국 관련 유물로 백제에서 수입된 철로 만든 철제 방패 2점(일본 중요문화재)이 포함돼 있다. 5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방패는 각각 세로 가로 139.38갽71.21㎝, 143.32갽83.63㎝의 장방형으로, 앞 면 전체를 덮은 세련된 기하학적 문양이 돋보인다.

/나라=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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