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TV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옛날 공자님 말씀만큼이나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어제 TV에서 봤는데…" 하는 말을 들을 때면 TV가 단순한 오락매체가 아니라 사고의 근거를 제시하는 가치체계가 됐음을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현장에서 생중계로 전하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 강렬한 현실감에 빨려 들어 나도 모르게 분노에 치를 떨기도 하고, 박장대소 하기도 한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것이 과연 모두 진실일까?교육 채널 France5에서 매주 일요일 방송하는 '정지화면'은 바로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기획됐다. 한 주 동안 방송된 프로그램 중 관심을 끈 주제를 50분에 걸쳐 분석하는데, 뉴스는 물론, 오락 게임 시트콤까지 모든 장르가 도마에 오른다. 카메라 뒤에 숨은 시각을 들춰냄으로써 올바른 영상 읽기를 시도하는 것, '정지화면'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달 19일 방송된 '이라크의 미군 영상'은 TV가 제시하는 영상이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시각일 뿐임을 명백하게 보여줬다. 테러리스트를 찾아낸다며 이라크 시민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 냉혹한 병사, 테러로 동료가 팔다리를 잃는 것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한 병사, 이라크 시민들과 재건 협상에 여념이 없는 열성적인 병사, 한 주 동안 프랑스TV가 비춘 미군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이 판이한 영상들은 같은 부대를 취재한 결과였다.
'정지화면'은 각 채널이 방송한 르포 영상의 일부를 발췌해 보여준 뒤 르포를 제작한 기자들에게 취재 의도와 제작 방식, 현장 조건을 물었다. '정지화면'의 영상분석팀과 기자들 사이에 오가는 대담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이중 국적의 기자와 프랑스 기자가 얻어낸 취재 협조의 범위가 달랐고, 각 문화에 대한 기자의 접근 방식도 달랐다는 점, 나아가 극적인 효과에 중점을 두고 나흘간 취재한 뉴스용 르포와 전후맥락 해설에 초점을 맞추고 보름간 취재한 시사매거진용 르포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면 뒤의 시각을 이해한다는 것은 긍정 혹은 부정의 이원론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사고로 영상을 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시청습관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정지화면'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TV에서 접하는 영상이 수많은 관문을 거치며 걸러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기 쉽게 풀이함으로써 영상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시청 습관의 기초를 닦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처럼, '정지화면'은 프랑스 시청자들에게 알고 보면 맛이 다른 영상 읽기의 묘미를 전하고 있다.
/오소영·프랑스 그르노블3대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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