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국내 증권사들은 일제히 삼성SDI의 목표주가를 기존 13만원에서 18만∼22만원으로 올려 잡는다고 발표했다. 전날 발표된 삼성SDI의 지난해 실적이 당초 기대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삼성SDI의 지난해 실적은 그만큼 놀라웠다.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이 모두 전년보다 각각 8.55%, 4.1%, 10.2%씩 늘어나 7조1,982억원, 9,090억원, 6,494억원을 기록했다.사실 삼성SDI는 1970년 창립 이래 브라운관 전문기업으로 급성장하면서 세계 브라운관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91년부터 브라운관 세계 생산 1위를 놓치지 않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삼성SDI는 그룹에서도 '알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브라운관 산업은 90년대 중반 평판 디스플레이의 등장으로 이제는 '사양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사업. 브라운관 전문기업 삼성SDI가 불황을 모르는 기업으로 예상밖 실적을 기록한 비결은 무엇일까.
굴뚝 기업에서 디지털 기업 변신
2000년 3월 충남 천안시 성성동에서는 요란한 기계음이 울렸다. 삼성SDI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1기 라인 건설을 앞두고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 당시 김순택 사장은 꽃샘 추위 때문에 채 녹지도 않은 땅에서 이뤄지는 터 다지기 공사를 매일같이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PDP 라인 건설은 3,000억원이 넘게 들어가는 대규모 투자. 자칫 실패하면 회사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는 사업이었다. 게다가 일본 기업들은 이미 5∼6년을 앞서 투자에 나선 상황이었다. 때문에 제일합섬(현 새한), 삼성 비서실 등에 재직하다 2000년 1월 부임한 김 사장이 단 3개월 만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에 삼성 내부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김 사장의 회고. "당시에도 브라운관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 나갔습니다. 문제는 브라운관 이후 였습니다. 평판 디스플레이의 등장으로 축소될 것이 뻔한 브라운관 시장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삼성 비서실에서 전자사업에 관여했던 김 사장은 오랜 고민 끝에 과감한 변신을 선택했다. PDP, 유기EL, 2차전지 등 3개 분야를 신수종사업으로 선정, 집중 투자에 나선 것.
하지만 3개 분야 모두 제품이 이제 막 양산돼 시장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터라 쉽게 본궤도에 오르지는 못했다. 2000년 5월 기공식을 가진 PDP 1기 라인은 이듬해 7월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지만 그해 고작 3,400개를 파는데 그쳤다. 회사 안팎에서 "너무 앞서서 투자를 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김 사장은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투자와 기술개발에만 몰두했다.
목표는 글로벌 톱
디지털 산업의 흐름을 내다보고 이뤄진 삼성SDI의 과감한 변신은 1∼2년 만에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세계 정보통신(IT) 경기 회복에 따라 2차전지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디지털 TV시장이 성장하면서 PDP 판매량도 급격히 늘었다. 덕분에 2002년 5월 마침내 2차전지가 월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이어 지난해 6월에는 PDP와 유기EL이 잇따라 월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특히 PDP는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2002년 6만3,000대였던 PDP 패널 판매량은 지난해에는 무려 400% 이상 늘어난 32만7,000대로 치솟았다. 덕분에 삼성SDI의 PDP 라인은 지난해 단 한차례도 쉬지 않고 돌아갔다. PDP 1, 2라인을 가동한 지난해 월 13만대 생산규모를 갖췄고 올해 안에 3라인(월 12만대 규모)이 완공되면 명실상부한 PDP 세계 1위 업체로 부상할 전망이다.
과감한 투자와 더불어 또 하나의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생산성 혁신 노력이다. 유기EL의 경우 2002년 8월 세계 최초로 풀 컬러 PM 유기EL 양산에 성공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6만5,000컬러 제품을 내놓았다. 또 PDP 분야에서도 마의 벽으로 통했던 70인치의 벽을 넘어 80인치를 처음으로 내놓고 한 장의 유리원판에서 패널 3∼4장을 뽑을 수 있는 다면취 공법을 개발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현재 삼성SDI의 주력 생산품은 시장 지배력에서 모두 글로벌 5위 안에 들어가는 수준. 기존 주력 제품이었던 컬러브라운관(27%)과 휴대폰용 액정표시장치(LCD·23%)는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신사업인 PDP, 유기EL, 2차전지는 각각 2위(21%), 2위(30%), 4위(9%)에 올라있다. 올해에는 신사업 분야의 매출액 비율이 55%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자업계에서는 "굴뚝 기업에서 첨단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면서 "컬러 브라운관의 안정성, 휴대폰용 LCD의 수익성, 신사업 분야의 성장성 등으로 탄탄한 수익구조를 갖췄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시장의 이 같은 평가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올해부터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의 눈은 이미 저만치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 PDP·유기EL·2차전지
삼성SDI의 핵심사업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유기EL, 2차전지 등 3개분야. 모두 디지털 산업의 성장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첨단 제품들이다.
흔히 벽걸이 TV로 불리는 PDP TV의 디스플레이 소재로 사용되는 PDP는 두 장의 얇은 유리 기판 사이에 형광성 혼합 가스를 채운 뒤 고전압을 가해 발생한 이온가스를 방전시켜 영상을 구현한다. 40인치 이상의 대형화면을 10㎝ 이하로 얇게 제작할 수 있어 대형 디지털TV의 디스플레이 소재로 적합하다.
유기EL(OLED·Oraganic Light Emitting Diodes)은 전류를 흘려주면 스스로 발광하는 유기발광소자를 유리기판 사이에 주입해 영상을 표시하는 첨단 디스플레이 소재. 초고속, 초고화질, 초슬림 등 미래형 첨단 디스플레이의 3대 요건을 갖추고 있다.
2차 전지(Rechargeable Batteries)는 전지의 전기화학적 특성이 유지되는 한 얼마든지 충전해서 재사용이 가능한 전지로 휴대폰, 노트북PC, PDA 등 각종 모바일 전자기기의 전원(電源)으로 사용되는 핵심부품이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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