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든, TV로 보든 야생동물 얘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아무리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많다 해도 야생동물에 관한 화제는 꼭 지면에 오른다. 잃어가는 자연과 야성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 때문이리라. 얼마 전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동면을 않고 여전히 활보하고 다닌다는, 어찌 보면 우리 일상과 크게 상관이 없어보이는 사실도 그래서 중요한 뉴스가 됐다.(사실 그 곰은 온전한 의미에서의 야생은 아니다)
내친 김에 지리산에 내려가 한상훈(韓尙勳·43) 박사를 만났다. 수십 년 동안 산하를 누비며 야생동물 보존을 위해 진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현장생태학자'(이런 분류가 가능하다면)다. "이런, 고양이한테 잡아 먹혔네." 무심한 듯 걸으면서도 그는 땅에 흩어진 새의 깃털 몇 오라기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외모와 언행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대로 자연을 닮았다. 그의 현 직책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관리팀장이다. 그에게서 우리 산의 진정한 주인, 곰 얘기를 들었다.
반달가슴곰을 말하기 전에 먼저 풀어야 할 오해가 있다. 곰은 동면에 들어갈 시기를 판단할 때 높은 나무에 올라가 몸을 던진다는 얘기가 있다. 엉덩이가 아프지 않아야 몇 달간 먹지않고 버티는 데 필요한 체지방이 축적된 것으로 여겨 비로소 잠에 든다는 것이다. 곰의 공격을 받을 때 죽은 척하고 있으면 곰이 착각해서 가버린다고도 했다. 곰의 IQ가 낮다는 인식을 확대 재생산해온 사례들인데 전자는 사실 무근이고, 후자는 야생동물의 일반적인 행태다. 곰 뿐 아니라 대개의 동물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곰이 미련하다구요? 천만에요." 한상훈씨는 곰의 지능은 동물 가운데 최상급에 속한다고 했다. "간단한 도구를 활용하거나, 스스로 생각해 행동하는 걸 보면 거의 침팬지 수준이지요. 서커스단에서 재주를 가르칠 때 호랑이나 사자 등과는 달리 채찍이 필요없는 동물이 곰입니다. 막대기 하나만으로 조련이 가능하지요."
곰이 기거하는 바위굴 속 바닥은 사람이 누워도 안락할 만큼 나무와 잎 따위로 놀랄 만큼 잘 다듬어져 있다. 단 며칠 묵는 잠자리도 대충 마련하는 법이 없다. 무거운 돌로 눌러가며 산죽(山竹)을 꼼꼼하게 엮는다(이게 산꾼들이 말하는 '곰선반'이다). 한씨가 이끄는 반달가슴곰 관리팀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건 지리산 일대 양봉(養蜂) 농가들의 피해다. 통당 꿀값이 30만원에 달하는 벌통이 지난 한해에만 200통이 넘게 털려 6,000여만원이나 물어주었다. 곰의 영리함은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개는 전혀 소용이 없다. 곰의 기척만 느껴도 낑낑대며 꼬리를 말아넣으니까) 낮 동안에는 점 찍은 벌통주변 숲에 몸을 감추고 주변의 위험 요소들을 세밀히 관찰해 두었다가 감시가 어려운 밤이 되면 순식간에 벌통을 덮친다.
"곰의 학습능력은 기막힐 정도입니다. 처음엔 닥치는 대로 벌통을 쓰러뜨려 꿀을 찾았어요. 그렇게 빈통에 몇 번 헛탕을 치더니 얼마 뒤부터는 반드시 뚜껑을 열어보고는 꿀이 찬 것만 건드립디다. 요즘엔 귀찮게 쏘아대는 벌들을 아예 다른 곳으로 치워놓습니다." 벌통 밑단에는 벌 유인용 설탕물이 담긴 바가지가 들여져 있다. 곰은 먼저 이걸 꺼내 벌들이 새카맣게 붙은 바가지를 멀찌감치 떼어놓은 다음 느긋하게 꿀을 먹는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들어서 부쩍 높아졌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전반적인 환경인식이 새로워지기 시작한 그 시기다) 자연보존협회 등 민간에서 서식흔적을 발견했다는 주장을 해왔고, 97년 한씨가 일본의 전문가 30여명을 초청해 연 국제세미나에서는 "지리산에 최소한 8마리가 살고 있다"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됐다. "산꾼들의 목격담이 적지 않았던 데다, 서식흔적들도 분명했지요." 흔적이란 건 이런 것들이다. 곰의 발자국은 사람의 것과 비슷하게 찍힌다. 발바닥과 다섯 발가락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람이야 깊은 산속을 양말까지 벗고 돌아다닐 리 없다) 배설물의 모양, 배설 위치(나무 그루터기 등 높은 위치에 앉아 눈다)도 아주 비슷하다. 야생식물 성분과 달짝지근한 냄새만 다를 뿐이다. 이곳 저곳 나무줄기에 다섯 줄로 죽죽 난 발톱자국도 곰의 존재를 확인하는 지표다.
지금 겨울잠도 잊은 채 돌아다니고 있는 곰들은 2001년 9월 방사된 것이다. 막 이유(離乳)한 생후 6∼7개월짜리 수컷 '장군' '반돌'과 암컷인 '반순' '막내' 등 네 마리가 놓여졌다. 걔 중 막내는 등산객을 따라 다니며 음식을 받아먹는 등 야생 적응에 실패, 한달여만에 재포획돼 우리에서 키워지고 있고, 반순이는 이듬해 여름 올무에 걸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래서 현재 지리산을 휘젓는 건 장군이와 반돌이(원래 장군이의 꼬붕이었으나 요샌 섬진강쪽 지역을 무대로 훌륭하게 독자생활을 하고있다) 둘 뿐이다. 자연번식은 물 건너갔지만 야생에서의 생존실험만큼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한씨는 그래도 이들이 사람과 계속 가까이 지내려 해 걱정이다. (야생은 인간을 피해 웬만해선 눈에 띄지 않는다) "산 속의 빈 굿집 같은 곳에 무작정 들어가 쌀, 반찬을 털어가기도 하고,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이들이 나무에 걸어놓은 도시락을 채 가기도 합니다. 이젠 100㎏이 넘는 거구들로 자라 크게 위험할 수도 있어요." 재작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묘를 보수하던 장정 3∼4명이 곰과 마주쳤다. 손짓으로 불러 도시락과 라면에 막걸리까지 나눠 먹였다. 취흥이 오른 한 사람이 기념촬영을 하자며 팔을 두르려다 놀란 곰이 휘두른 발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원래 반달가슴곰은 산채나 도토리, 머루, 다래 등의 열매, 곤충유충이나 개미 따위를 먹는데 얘들은 사람 음식에 단단히 맛을 들인 상태에요."
곰이 무서워하는 인간은 관리팀 대원들 뿐이다. 목에 부착한 발신기를 교체, 점검하거나 혹은 민가피해를 줄이려 종종 잡아두기 때문이다. 한번은 곰을 좇다 암자에 묵은 대원 하나가 아침에 보니 방문 앞 댓돌 위 여러 켤레 신발 중 유독 제 것만 발기발기 찢겨 있더란다. 마치 화풀이를 해놓은 듯. "글쎄, 정말 그런 의도였는지도 모르지요. 워낙 영악한 동물이니까…. 작년 11월 반돌이를 포획해서는 막내가 있는 우리에 넣었는데 대원들이 다가갈 때마다 공연히 몸을 꼬며 발로 벽을 긋는 등 웬지 어색하게 행동하더라구요. 왜 저러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보는 눈만 없으면 엎드려 탈출용 땅굴을 파고 있었던 거에요." 마치 영화 속 탈옥수의 모습 같지 않은가. 반돌이는 그렇게 능청스럽게 판 땅굴을 통해 산으로 돌아갔다.
한씨는 재작년 5월 관리팀장으로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직접 인연을 맺었다. 방사 곰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지리산 지역의 야생곰(2002년 11월 처음 한 마리가 카메라에 잡혔다) 개체수를 10년 내 50마리 수준으로 복원하는 일이다. 늘 그렇듯 문제는 빈약한 예산과 인력, 장비다. 24명 팀원으로는 곰 추적, 서식환경조사, 밀렵감시순찰 등 최소한의 임무를 소화하기에도 힘겹다. 하루 10㎞이상 험산을 누비고 혹한의 눈밭에서 툭하면 며칠씩 비박도 불사하는 대원들을 보기가 한씨는 그래서 늘 안쓰럽고 미안하다. (대원들 대부분이 가족과 떨어져 인근 여관 등에서 자취나 하숙을 한다. 한씨도 보통 한달에 한번쯤 서울 집에 들러 잠깐 아내와 아들을 만난다) 예산이라야 겨우 인건비에다 곰으로 인한 민가피해보상금과 보험료만 간신히 충당할 수 있을 뿐이다.
"다들 고생이 심하지만 그래도 보람은 큽니다. 곰을 보호한다는 건 결국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더구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곰이 죽으면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어온 곰 문화권입니다. 그들 역시 똑 같은 이 땅의 주인이라는 뜻이지요."
한씨는 아버지를 따라 낙동강가에 낚시를 다니던 어릴 적부터 생태학자의 꿈을 일관되게 키워왔다. 그래서 대학도 원병오(元炳旿) 교수가 있는 경희대 생물학과를 택했고, 한반도 생태자료가 훨씬 풍부한 일본에 건너가 도쿄농업대와 홋카이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97년 귀국해서는 현장운동과 저술, 강의 등을 통해 본격적인 야생생태보존에 뛰어들었다. 환경부에 몸담았을 때는 동강을 지켜냈고, 백두대간보존특별법에도 DMZ에서부터 제주도까지 빠짐없이 산야를 디딘 그의 발자국과 땀방울이 담겨있다. 올해 안에 처음 완성될 획기적인 '전국생태자연지도'도 그런 성과물의 하나다.
그가 꿈꾸는 건 결국 야생동물과 인간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의 포부에 전적으로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몃 엉뚱한 걱정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글쎄, 동물은 고사하고 사람끼리도 도무지 공존하고 싶지않은 이가
이토록 많은데….'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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