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치자금과 결부된 정치부패의 척결이 정치개혁의 알파이며 오메가인 사실은 이미 자명해졌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현 시점까지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한 신문기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역시 정치자금 불법수수의 연장선상에 있다.줄줄이 구속되고 있는 정치인들을 바라보면서 정치자금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정치발전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운을 새롭게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요즘 같아서는 동북아시아 거점국가로의 도약과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개막은 뜬구름 같은 얘기이며 오히려 제2의 경제 위기로 치닫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만큼 정치안정이 중요하고 정치개혁의 제도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지난주 기업의 정치 후원금 제공을 법적으로 전면 금지할 것을 합의한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불법정치자금의 대부분이 기업으로부터 조달되었다는 측면에서 기업과 정치권의 연결 고리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과감한 수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수술이 우리나라의 병든 정치를 치유하고 건강한 정치로 이끌기 위해서는 엄정하고 치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조속히 정상궤도를 찾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과 아울러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는 정치권과 재계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몫이기도 하다.
정치권이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곧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과 개인 후원금에 의해 정치를 꾸려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자금의 수요와 공급의 어느 차원에서 문제 해결의 후속조치를 찾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정치비용을 줄이는 조치가 병행되어야만 이번 수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중앙당 축소와 지구당의 폐지 정도로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지구당이라는 공조직 대신 눈에 띄지 않는 사조직이 늘어나면 음성적 정치비용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거운동 방식 또한 개선하지 않으면 정치비용 삭감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정치비용의 거품을 거두어 절약형 정치를 한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야 할 다음 단계는 안정적으로 정치자금을 공급하는 일이다. 주요정당의 당비가 전체 당 재정의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소액다수 후원금이 얼마만큼이나 도움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치자금의 공급이 어려워질 때 또다시 음성적 정치자금의 유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당이나 개별 정치인의 은밀한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것이 기업의 또 다른 고민이다.
이 단계에서 유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자금수요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정치자금을 공급해야 할 주체로서 유권자들은 우선 정치자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떨구어 내야 한다.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불법정치자금이 음성적으로 조달되어 왔고, 정경유착의 접착제 구실을 해 왔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정치자금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자금이 민주정치체제의 필수적인 운영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이 필요하며 정치자금이 정치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정치투자로 인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자금 그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거나, 과도하게 정치자금을 대폭 줄이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삼는 것은 오히려 정치활동을 위축시켜 정치개혁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 금지로 시작한 정치자금제도에 대한 수술은 정치비용의 절약, 안정적 정치자금의 공급이라는 후속조치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동시에 정치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수술의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은 건강한 몸을 되찾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내친김에 우리의 정치체질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 정 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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