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정부가 31일 파키스탄 핵 개발의 대부 압둘 카디르 칸(69·사진) 박사의 정부 고문직을 박탈, 파키스탄은 물론 국제사회에 적지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칸 박사는 최근 우라늄 농축방식의 핵 기술을 이란, 리비아 등지로 몰래 반출한 혐의를 받아왔다. 파키스탄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핵 밀반출에 관한 모든 비밀을 간직해온 칸의 기소를 염두에 둔 사전 수순인지, 아니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미국을 의식한 상징적 무마책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향후 칸의 신병처리 결과는 미―파키스탄 관계에는 물론 리비아, 이란, 파키스탄 등 이슬람 핵 개발 국가들간 관계 정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날 핵 위원회를 열고 가택연금 상태인 칸 박사에게서 총리 과학 담당 고문직을 박탈했다.
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파키스탄 핵 기술 반출 보고서가 발표된 후 수사를 진행해온 파키스탄 군 정보기관은 칸과 동료 모하메드 파루크 박사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설비 설계도를 직접 또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암시장을 통해 이란과 리비아로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같이 중대한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상징적 조치만을 취한 것은 핵 확산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국민적 영웅인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군부 및 국민의 정서를 동시에 고려했기 때문이다.
칸 박사는 1998년 핵 무기 개발을 완료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 파키스탄이 인접 핵 보유국 인도와 어깨를 겨눌 수 있도록 한 주인공이다.
특히 파키스탄 국민들은 1970년부터 6년간 네덜란드의 핵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농축 우라늄 기술을 빼내 귀국한 후 칸 연구소를 만들어 핵무기 개발에 헌신해온 그의 행적에서 민족주의의 향수를 느껴왔다.
관측통들은 향후 칸의 기소여부에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파키스탄 정치학자 라파트 후세인은 "칸 박사의 기소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행위"라고 전제, "그가 법정에 선다면 파키스탄 정부의 승인 하에 핵 기술이 반출됐다는 내용까지 흘러나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반면 모하마드 니아지는 "칸을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고 칸을 기소하려 한다는 이슬람 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 상황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미 행정부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핵 확산에 대해 정면 대응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 정보기관들은 칸 박사가 북한의 핵 개발에도 적지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특히 2002년 칸 연구소가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습득하는 대가로 농축 우라늄 개발 기술 및 부품을 제공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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