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4인승 선미익(先尾翼) 항공기 '반디호'가 조만간 세계 최초로 남·북극점을 경유하는 대장정에 오른다. 반디호는 지난 달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세바스찬에서 첫 비행에 나섰다가 쿠바 상공에서 자동항법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회항했는데 수리가 끝나는 대로 다시 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조종사는 2000년 4월 조종석 덮개가 없는 단발 항공기로 세계 최초로 북극점 경유 비행에 성공했던 미국인 탐험조종사인 거스 맥러드(Gus Mcleod·48)씨. 반디호 개발을 주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김응태 박사가 이번 도전 성공을 기원하며 띄우는 메시지를 싣는다. /편집자주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제작
반딧불이처럼 환한 모습으로 파란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르는 반디호야. 1997년부터 30억원을 들여 4년여간 연구한 끝에 2001년 9월 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너 나이도 이제 세살이 됐구나. 하지만 너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직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
우선 남·북극점을 경유하는 비행의 대장정에 올라 주목을 받게 된 소감은 어떠니? 엔진이 하나인 단발 항공기로는 세계 최초의 도전인 이번 비행에 성공하면 우리나라의 경비행기 개발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비행기 시장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거야.
남·북극점 경유 비행을 하려면 속도가 빨라야 하고 때로는 고도 5㎞의 높은 산을 넘어야 하며, 영하 30도 이하의 추운 날씨도 견뎌야 해. 성능이 우수하고 완벽하게 제작된 항공기라야 이런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런데 많은 미국 항공기를 제치고 네가 이런 기록비행에 선택됐다는 것은 우리 과학기술의 저력을 보여준 사건이야.
넌 우리 나라의 순수 기술로 설계·제작된 4인승 선미익 항공기로서, 최대 속도 320㎞/h, 순항속도 280㎞/h를 자랑하지. 일반 항공기는 꼬리 쪽에 수평꼬리날개가 달려 있는데, 너는 동체 앞부분에 수평꼬리날개가 달렸어. 이렇게 앞에 달린 수평꼬리날개를 '선미익'이라 하는데, 이 덕분에 사고 위험이 제일 많은 이착륙시에도 안전하게 뜨고 내릴 수 있지.
또한 250마력의 엔진을 동체 뒤에 장착해 추진 효율을 높이는 한편 소음을 줄였어. 더구나 객실 최대 폭이 1.2m나 돼 기존 4인승 항공기보다 넓고, 동체 양쪽에 달려 있는 출입구가 위로 열리도록 돼 있어 타고 내리기에도 편리하지. 해외에서 판매되는 기존 선미익 항공기는 대부분 수직꼬리날개를 주날개 끝에 장착하고 있는데 비해, 너는 양쪽 주날개에 기다란 파이프 모양의 붐을 장착하고 그 뒤에 수직꼬리날개를 장착해 비행특성을 한층 향상시켰어.
너를 만들고 나니 엔진도 함께 개발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더군. 자동차 제작회사에서는 엔진도 함께 제작하니까 그런 말이 나올만하지.
자동차는 주행 중 엔진이 멈춘다고 해도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 그러나 항공기는 비행하다 엔진이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어? 소형 항공기는 엔진이 꺼져도 종이비행기처럼 활주비행을 할 수 있어 안전한 장소를 찾아 비상 착륙을 시도하겠지. 하지만 속도가 매우 빠른 제트기는 엔진이 고장나면 살아남기가 거의 불가능해. 그래서 제트기는 대체로 엔진을 두 개 이상 장착하지.
차세대 소형 항공기 개발 열기
한편 너를 소형 항공기라고도 하고 경비행기라고도 하는데 어느 게 맞냐고? 둘 다 맞는 표현이야. 항공기는 비행기, 헬리콥터, 비행선 등 하늘을 날 수 있는 장치를 모두 포함하고, 비행기는 그 중 날개를 장착한 항공기를 뜻하지. 소형 비행기는 가벼워 흔히 경비행기라고 부르지. 항공기 분류는 다양한데, 크기나 무게에 따라서 초경량 항공기, 소형 항공기, 중대형 항공기로 구분해.
초경량 항공기는 2인승 이하이고, 최대 중량이 225㎏ 이하인 항공기로 조종면장이 없어도 조종할 수 있어. 소형 항공기는 19인승 이하이고 최대 중량이 8,900㎏ 이하인 항공기이며, 중대형 항공기는 이보다 큰 항공기로 여객기나 수송기 등이 있지. 반디호를 초경량 항공기와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인이 많은데, 반디호는 4인승이고 최대 중량이 1,200㎏로서 소형 항공기에 속하지.
지난 20여년 간 소형항공기 산업의 침체로 세계적으로 운용되는 소형 항공기 대부분이 노후해 신규 수요가 많이 생겼지. 따라서 미국에서는 1994년부터 항공우주국(NASA) 주도로 컨소시엄을 구성, 첨단 대형 항공기에 사용되는 일부 기술을 도입한 21세기 차세대 소형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지.
뿐만 아니라 2001년부터는 역시 NASA 주도로 SATS(Small Aircraft Transportation System)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일반 소규모 공항을 활용하고 '하늘 위의 고속도로(Highway-in-the-Sky)'개념을 도입하는 등 소형 항공기 운항 기반 구축을 추진하고 있어. 이렇게 되면 소형 항공기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져 앞으로는 성능과 안전성, 조종 편의성 등이뛰어난 경비행기가 탄생할거야.
예를 들어 여객기와 전투기에만 사용되는 다기능 화면(Multi Function Display)이 경비행기에도 쓰여 계기정보는 물론 주변지형을 3차원으로 보여주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정확히 유도해주게 되지.
또 경비행기 속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쓰로틀 외에 믹스쳐 레버, 프로펠러 속도조절 레버 등 3가지 레버를 함께 조작해야 되기 때문에 조종이 쉽지 않았어. 그런데 최근 개발중인 싱글레버 장치가 완성되면 조종사가 레버 하나만 조절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3개의 레버를 최적의 위치로 움직여 주지. 그러면 경비행기도 자동차처럼 쉽게 타고 다닐 수 있게돼. 물론 그때쯤 되면 앞으로 태어나는 너의 후손들도 더욱 멋진 모습으로 변했겠지. 우리나라 항공기 개발 기술의 소망을 담은 네가 남극점과 북극점을 무사히 돌아 세계 경비행기시장의 한가운데 우뚝 서는 그 날을 기대하며…. 반디호, 파이팅!
김 응 태 박사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항공공학 석사
미국 퍼듀대 항공공학 박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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