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로 유명한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선전부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58년 대구에서 민의원에 당선된 조재천은 전남 출신이다. 후에 공화당 정권 내무장관을 지낸 경북 출신 엄민영은 1960년 전북에서 참의원에 당선됐다. DJ는 야당 시절 선거유세 때 망국적인 지역감정에서 벗어날 것을 호소하며 자주 이 예를 들었다. 전남 출신의 DJ 자신이 1961년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첫 당선됐다. 하지만 이들 선거 당시만 해도 지역감정이 심하게 작용하지 않을 때이니 DJ가 역설한 의미가 그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DJ는 평민당 시절인 1990년 전남 영광·함평 보궐선거에 경북 출신 이수인을 공천, 당선을 이끌어냈다. 3당 합당으로 지역감정이 팽배했을 무렵이어서 대단한 결단이란 평가가 대세였지만, 한편에선 DJ의 호남 영향력을 들어 '결과를 내다 본 대권전략'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당내에서 "지역감정은 대구 출신이 대구에서 평민당 공천으로 당선되고, 광주에서 광주 출신이 민자당 공천으로 당선돼야 해소되는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대구 출마 결심이 지역주의에 맞선 살신성인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호남 중진들의 물갈이 거부 등 당의 어려운 속사정을 감안한 전략이지만 "나를 버려 당을 구하겠다"는 정신이 감동을 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0년 서울 종로 포기, 부산 출마를 상기시킨다. 당장 한화갑·김경재 의원이 뒤를 따랐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도 같은 결단을 내릴 지가 정가의 관심사다. 이벤트 정치라는 반론도 있지만, 지역주의에 맞서 기득권인 '텃밭'을 포기하는 것은 전략차원을 넘어 대의(大義)에 맞는 용기로 받아들여진다.
■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 '표적공천', '맞짱대결'이란 말이다. 우리당에서는 "공안기술자 이미지의 정형근 의원의 저격수로 민청학련 사형수 출신 이철 전의원을 내세우자"는 주장이 있었다. 정 의원의 전력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고, 어쩐지 한건주의 인상이 짙다. 중진들의 텃밭 포기 흐름이 일자 서울의 초선·신인들이 "내 선거구로 와 한판 붙자"고 나서는 것도 성사 여부를 떠나 자기 위상을 높이려는 쇼로 보인다. 대도시는 지역성이 엷다고 하지만, 총선은 그래도 지역대표를 뽑는 행사다. 지역감정 타파는 백번 옳지만, 정치가 이벤트 성격의 한건주의로만 흐르면 지역대표성은 찾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도는 분명 아니다.
/최규식 논설위원 kscho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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