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이 서는 바람에 졸지에 날벼락 맞는 일이야 많다지만, 개벽의 새 세상을 만나는 수도 더러는 있는 모양이다. 이를 테면 누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고 누구는 그 덕에 자다가 떡을 얻어먹게 된 식인데, 충북 제천의 수산면 상천리가 그 '떡 잔치'를 벌이게 됐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청풍명월의 본향'이라지만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한반도의 드센 팔자도 모자라 한 술 더 얹어 생겨난 곳이 제천이다. 국립공원 월악산이 버티고 선 탓에 논·밭의 5.5배, 시 면적의 74%가 임야다. 청풍·한수면 기름진 땅을 거진 집어삼키며 1984년 물을 담은 댐이 그나마도 제천댐이 아니라 '충주댐'인 게 억울해서 주민들은 충주호가 아니라 청풍호, 충주댐이 아니라 청풍댐이라고 우겨 부르는지 모른다. 제천에서도 '상촌'으로 통하는 상천리는 그 댐의 끄트머리, 남한강 수계의 상투자리에 앉은 마을이다."댐 서기 전에는 여기가 섬이나 진배 없던 동네요." 제천사람 허영호(산악인)가 산을 처음 배웠다던 그 금수산(해발 1,016m)이 마을 뒤를 에우고, 앞으로는 500고지라지만 간단치 않은 산세의 가운산이 막고 섰다. 해서, 상촌 사람들은 산막치고 숯 굽고 야산 태워 화전 일구던 그 시절 훨씬 이전서부터 인근 제천장이나 수산장을 보려도 거룻배 불러 남한강을 건너야 했다. "배를 곯더라도 집집이 여름 보리 한 말, 가을 나락 한 말은 1년 모곡으로 뱃삯을 치렀던 기여." 길이 없으니 자동차야 애당초 소용이 없었기에 바지게 하나로 버텨 온 세월이었다. "꼭 32년 전이요. 길이라야 죄다 산판길이지 뭐. 이사 들 때 좁아서 보따리를 양손에 못 쥐겠더라니까." 세상 등지고 돈 모으자며 5년 기약하고 들어왔다가 50년 세월을 눌러앉게 됐다는 김문기(59)씨 말이다.
그런데 댐이 서면서, 사람 좋자는 목적이 아니라 댐 공사 편하자고 2차로 이설도로가 닦였고, 그 길이 마을 앞을 스치게 된 것이다. 수산면은 물론이고, 제천 같은 '대도시'와도 육로가 난 셈이다. 그 길이 포장까지 된 것은 불과 3년 전이지만, 주민들은 그 때부터 상천리의 세월이 시작됐다고들 입을 모았다.
길이 생기니 사람들이 자연 꼬일 밖에. 산은 험해도 비단 같다고 금수산이다. 볕 좋은 봄 가을 주말이면 관광버스만도 20, 30여대가 찾아 들고, 평일에도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지나다니게 된 것이다. 그 사이 청풍호반에 드라마 왕건 세트장이 섰고, 인근에 유원지며 콘도 등이 개발됐다. 63년 이장을 역임한 김용빈(68)씨는 그 개벽의 변화를 "이제는 사시사철 앉아서도 전국 팔도 번호판을 죄 구경하며 살게 된거유"라고 풀어냈다.
그렇다고 당장 주민 생활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농사야 비알밭 갈아 심는 고추며 콩이 주종이고, 담배농사를 쥐고 사는 집도 아직 있다. 가을걷이 끝나면 마을 공동으로 송이를 캐는데, 그게 쏠쏠해서 지난해에는 마을 40여 가구마다 300만원 가량씩은 챙겨갔다고 한다. 마을에는 100년씩 묵은 산수유 나무도 지천이라 붉게 여문 놈들을 털어 술도 담그고 장에도 내다 파는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중간상에게 밭떼기로 넘기던 것을 최근에는 관광객들에게 직거래로 파는 양이 더 많아졌다는 게 마을이 얻은 직접적인 경제효과라면 효과다.
하지만 담장 치고 살 때는 궁핍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길이 열리니 그게 또 그렇지가 않더란다. 요모 조모 살 길을 궁리하던 차에 수년 전 제천시가 한강수계 상수원 청정사업에 쓰는 물기금으로 '특수사업'을 벌일 참이라는 소식을 듣고 거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간 상수원지역 마을의 하수처리시설이며, 마을 안길 포장, 창고며 마을회관 건립 등 기반시설 기금으로 표 없이 나가던 예산을 헐어 친환경 소득사업에 투자해보자는 취지였다. 그 사업 대상지로 상천리가 뽑혀 이웃 마을의 부러움을 사가며 18억원의 거금을 독식하게 된 것인데, 해서 공무원들과 전문가집단, 주민과의 곡절 많은 협의 끝에 선정한 것이 참숯가마 찜질 민박촌 사업이었다.
만 2년 공사 끝에 지난해 말 완공한 3,500여 평 부지의 민박타운은 멀리 구름 덮인 망덕봉과 금수산 정상을 마주하고 상천리 백운동 부락을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터에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숯가마 5동에 찜질방 3동, 13평 민박집 3동, 샤워장과 식당, 홍보관 등이 그 시설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안하던 사업을 뎀벙 맡을 자신이 없더라'고 했다. "평생 짓는 고추농사도 병충해로 쫄딱 망하는 해가 있는디, 어찌 경험도 없이…." '돈은 얼매나 버는가는 몰라도 부지런 떨기로는 전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평을 듣는 10년 내리 이장 김용일(48)씨도 고민이었단다. 참나무 조달이며, 숯가마·민박촌 운영, 홍보며 숯 판로개척 등 모든 게 막막하더라는 것이다. 주민들은 시와 협의 끝에 시설을 전문경영인에게 3년 계약으로 위탁운영토록 했다. 업자에게 연 임대료 3,800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시에 사용료 1,160여만원을 내고 남는 돈 2,640만원이 매년 향후 3년간 얻게 될 마을 소득이다. 시설 운영인력 9명 가운데 7명이 마을의 젊은이들인 만큼 그들이 경영 노하우를 익히고, 민박촌이 자리를 잡으면 직영한다는 구상. 지난달 27일 문을 연 민박촌은 찜질방이며 숙소를 무료로 개방, 2월 말까지 이용객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시설 및 운영 개선점과 적정 요금 등을 그렇게 정할 참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쌓여갈 마을기금 용처는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외지인들에게 제공할 프로그램 구상이 더 급하다. 마을 뒤 시마골에서 제천 10경중 5경에 드는 용담폭포를 지나 초경동까지 6㎞ 등산로를, 그것도 돌비알 산길을 그대로 살려 닦자는 안에서부터, 초경천 계곡물 퍼올려 고드름계곡으로 만들자는 구상, 용담계곡에 송사리 피라미 가재 자연 산란장을 만들자는 계획도 나왔다. 집에서 담근 산골 토종 된장, 고추장에 송이를 한 송이씩 박아 '송이지'를 만들어 팔아보자는 경제사업 구상도 있고, 정부의 농어촌개발사업 기금을 받아 아예 마을 전체를 황토 민박촌으로 만들어보자는 얘기도 나왔다.
"관건은 홍보유. 잘 좀 써 줘유." 매년 음력 열나흗날이면 어김없이 올리는 당제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올해 상촌리 당제는 더욱 정하고 장하게 올릴 모양이다.
/제천=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오픈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공짜 소문 덕인지는 몰라도 민박동은 이미 차다시피 했다. 숯가마 찜질방 인기도 예사롭지 않아 제천 충주는 물론이고 멀리 서울에서 찾아든 사람들로 붐볐다. 어차피 겨울 농사도 없던 터. 설 전 시험가동 때부터 찜질방을 안방 삼아 들던 마을 아낙네들과 관광객들이 섞여 앉아 숯가마 찜질 평가가 한창이다.
-동네 경치는 100점인데 시설은 글쎄….
찜질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한 관광객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 주민이 대뜸 나선다.
-그 뭐이냐, 라커는 벌써 주문해놨고, 찜질방마다 온도계도 단답디다.
-탈의실·샤워장이 떨어져 있는 게 좀 불편하잖아?
-아따, 모르는 소리요. 참숯가마 찜질은 땀이 나도 샤워를 안하는 거랍디다. 숯이 땀이고 땀냄새를 빨아 딜이서 끈적거리지도 않잖유.
그새 숯가마 찜질 반(半)전문가가 돼 있는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마을 시설 홍보 겸 변론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도시에 있는 비까 번쩍한 시설에 대면 아직은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100% 참숯 찜질방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곧 명물이 될 겁니다." 주민들의 애정어린 억지성 홍보를 듣고 섰던, 경쟁입찰로 사업권을 얻은 황종석(45) 사장의 말이다. "두어 달 내에 손익분기점을 넘을 겁니다. 근거가 뭐냐구요? 나부터도 여기가 이렇게 좋으니까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