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는 굽고, 키는 눈에 띄게 줄었다. 고운 얼굴은 넝쿨 같은 주름으로 가득한지 오래다. 허공에 던진 춤 사위 하나로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것도 아득하다. 세월은 이렇게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세월이 꼭 야속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비록 몸은 늙었으나 작은 움직임과 떨림 하나하나도 그대로 춤이 되는 명무(名舞)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평균 연령 75세에 달하는 일곱 명의 그 예인들이 춤을 위해 무대에 선다.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女舞(여무), 허공에 그린 세월' 공연은 우리 숨결, 우리 몸짓을 온전이 담아낸, 제대로 된 전통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일곱 춤꾼 중 몇몇은 기녀, 무녀, 승려로 평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기존 무용계의 권력 지형에서 소외되어 있던 숨은 명인들인 셈이다.
그 명인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 검무 보유자인 김수악(78)씨다. 그는 교방굿거리춤과 진주 검무의 마지막 남은 계승자로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부산지법 판사로 재직하던 1988년 살풀이춤을 배우며 스승으로 모신 명인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교방굿거리춤은 말 그대로 조선시대 교방청(敎坊廳: 기녀들을 중심으로 해 가무를 관장하던 기관)에 의해 전해 오던 춤으로 단아하면서도 즉흥적인 성격이 강하다.
문화재로 지정 받지는 못했지만 호남에서 으뜸가는 춤꾼 중 하나인 '군산 할머니' 장금도(76)씨는 민살풀이춤를 선보인다. 살풀이 장단에 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춤이다. 멈춘 듯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춤이 일품이다. 박지홍에게서 춤을 배운 최희선(74), 권명화(70)씨는 '달구벌입춤'과 '살풀이춤'을 보여준다.
앞선 네 명인의 춤이 주로 기녀들 사이에서 전승되어온 기방춤이라면 황해도 출신의 큰 무당인 김금화(73)씨와 영산재 이수자인 한동회(59) 스님의 춤은 종교의식에서 수백년간 추어온 것들이다. 김금화씨는 황해도 굿에서 가장 큰 거리에 해당하는 칠성제석거리에서 추는 '거상춤'과 작두를 대신 물고기를 넣은 항아리 위에서 추는 '용궁 타는 춤'을 선보인다. '용궁 타는 춤'은 굿판에서 항아리가 용궁을 상징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 한동회 스님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불교 의식인 영산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나비춤을 보여준다.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구현한, 한국 전통춤의 정수로 불리는 '승무'도 감상할 수 있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예총회장,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간문화재 강선영씨가 팔십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성준류의 '승무'를 춘다. (02)3446―6418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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