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의 풍경유모토 고이치 지음 연구공간 수유+너머 동아시아근대세미나팀 옮김 그린비 발행·3만2,000원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노형석 글·이종학 사진 및 자료 제공 생각의나무 발행·2만9,500원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19세기 말 일본과 한국의 하루하루는 놀라움과 감탄, 그리고 실체가 정확치 않은 두려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서양의 근대 문명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면서 문물이 개변하고 제도는 급변했다. 선진 과학기술의 산물이 거리와 집안의 풍경을 바꿔놓았고,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속으로 안달 냈다.
하지만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가 '일본은 서양에 빚을 지지 않고는 명맥을 이어갈 수 없는 나라'라고 할 때의 근대화와 우리의 근대화는 사정이 다르다. 서양 문물의 직수입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구한말의 근대화는 주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 정책이라는 길 위를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화 시기 일본과 한국의 사회 변화를 소개한 두 책은 당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나 삽화,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1996년 출간된 '도설 메이지 사물 기원 사전'(圖說明治事物起源事典)을 번역한 '일본 근대의 풍경'은 일본 개국의 상징인 1853년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의 방문을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일본 사회의 급변하는 모습을 200개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재판제도, 추밀원 등 중요한 제도 변화는 물론 선풍기, 수도, 연필, 페인트, 해수욕, 양복, 소고기 전골, 대학생, 박사학위 등 자잘한 생활상의 변화가 당시 신문, 잡지에 실린 그림과 함께 매우 생생하다.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역시 서지학자인 고 이종학씨가 수집한 사진을 중심으로 구한말 한반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철도, 전기·통신, 도로, 상가, 탈것 등 근대화의 징표들을 꼽아서 소개하고 당시 조선 팔도의 변화상을 지역별로 살폈다.
1882년 11월 일본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오쿠라구미(大倉組) 상회 앞에 가로등이 처음 선 풍경을 전하면서 한 잡지는 "그 밝은 빛은 마치 대낮과 같고, 실로 해와 달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빛도 견줄 수 없다"고 썼다. 뒤이어 조선에 도입된 전기는 1920년대에 가면 일본 상가가 밀집한 남촌(지금의 충무로 부근)이 '금가루 뿌린 듯 불야성을 이룰 정도로' 시가의 모습을 바꿔 놓는다. 일본보다 더 일본 같았다는 이 거리의 가로등과 형형색색 네온사인을 즐기기 위해 아무 일도 없이 배회하며 사람들은 모던을 만끽했다.
하지만 서양 문명의 위력을 웅변하는 전기나 철도는 조선에서는 일제의 침탈을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전기요금 차별화 정책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기는 일본보다 40%까지 비쌌다. 만주에서 러시아와 싸우는 일본군을 먹여살리기 위한 병참 철도의 부설을 위해 조선인들은 땅을 징발당하고 노역에 등골이 휘었다. 조선에서 개화나 모던의 뒤편에는 수탈과 고통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시각자료를 통해 두 나라 근대화의 안팎을 두루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주는 책들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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