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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프리가 만난 사람- '레슬링 선수 무속인' 하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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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프리가 만난 사람- '레슬링 선수 무속인' 하태연

입력
2004.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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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15년 가까이 오직 매트 위에서 뒹굴던 국가 대표 레슬링 선수가 하루 아침에 무속인으로 변신했다니…. 레슬링 국가대표 하태연, 아니 이제 무속인 하신관(神官)으로 불리는 사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진출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던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신명의 운명이 따로 있는 법일까. 지난해 11월 내림굿을 받은 뒤 최근 서울 방이동 방이상가 내에 ‘태을장군’이란 간판의 점집을 연 그를 만났다.불운의 레슬링 유망주

하태연은 그러니까 레슬링계에선 불운의 유망주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레슬링에 뛰어들어, 전국시합 전관왕에 오르는 등 중ㆍ고교 시절 국내에서 그의 적수는 없었다. 동아대 1학년 때였던 1996년에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애틀란타 올림픽에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어린 나이로는 괄목할 성과였다. 그러나 그 영광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99년 세계선수권대회 2위, 2001년 국제 레슬링 대회 3관왕에 오르는 등 선수 시절 그는 레슬링 경량급에서 세계 최정상급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뿐만 아니라 아시안 게임의 메달도 끝내 그를 비켜갔다.

같은 체급 최대 라이벌은 올림픽에서 두번이나 금메달을 딴 ‘작은 거인’ 심권호. 96년 올림픽때만 해도 심권호는 48kg급, 하태연은 52kg급으로 같이 출전했지만, 97년부터 48kg급과 52kg급이 통합되면서 두 선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이 됐다.

실력면에서 두 선수는 늘 막상막하였다. 그러나 큰 대회일수록 행운은 언제나 심권호에게 돌아갔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선발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에서 하태연은 심권호에게 무릎을 꿇었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선 마침내 심권호를 제쳤지만, 신예 정지현에게 일격을 맞았다. 무릎 부위 등 예기치 않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연습 때나 다른 국제 경기에서는 잘 되다가도 꼭 큰 대회 때는 이상한 일들이 많이 터지면서 패하고 말았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 신의 조화 때문이었던 모양”이라고 멋쩍게 웃는다.

불현듯 찾아온 신내림

무속인 하신관(위)과 레슬링 선수 하태연의 눈빛이 다르다.

그에게 이상 신호가 생긴 것은 지난해 11월 초. 2004년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이 끝날 무렵이었다. 딱히 어디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몸이 불편했다.

아무 이유없이 소름 돋는 느낌이 온 몸을 감쌌다. 잠을 자면, 웬 할아버지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싸늘한 기운에 놀라 소스라치며 잠을 깨기 일쑤. 무서워서 잠 못 이룬 게 10여일이었다. 결국 방이동의 ‘태을천국’이란 점집을 찾게 됐고, 그 곳에서 ‘신이 내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사기치지 마라.” “쇼 하지 말라.” 처음엔 그도 그렇게 거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 거부의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기운은 더욱 빠져나갔다. 급기야 온 몸의 힘이 다 빠져 땅바닥에 뻗어버리는 일마저 생겼다. 결국 자신의 운명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신명은 그렇게 찾아왔다.

11월 말 결국 내림굿을 받았다. 서슬 푸른 작두 위에 오르고, 깨진 유리 위를 걸었다. 하신관이란 이름과 태을장군이란 간판을 내라는 계시도 받았다.

하태연은 1남6녀 중 막내다. 가족들이나 선수단측엔 내림굿을 받은 뒤에야 자신의 변신을 알렸다. 모두들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안함봉 국가대표팀 감독은 놀라면서도 “재능이 아깝다”며 안타까워 했고, 가족들은 “어찌 된 영문이냐”며 통곡했다. 둘째 누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내가 해야 할 것을 결국 네가 하게 됐구나.” 중 1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진주에서 무속인 생활을 하던 고모가 둘째 누나와 자신 중 한 명이 신 내림을 할 팔자라고 했던 것. 그가 보기엔 모든 것이 예정된 조화인 셈이었다. 경기 때마다 그렇게 안 풀리던 운도 마찬가지. 신내림까지 받은 그를 가족들은 아무도 말릴 수는 없었다.

평안과 행복

하태연은 “지금은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얼굴에 웃음기도 전혀 없었어요. 웃을 줄을 몰랐던 거죠. 근데, 지금은 사람들이 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서 보기가 좋대요.”

믿기 어려웠지만, 내림굿을 받기 전 그는 또 지독한 말더듬이었다고 한다. 중 1때 부친이 돌아가신 후 말더듬이 조금씩 시작됐다가 갈수록 심해졌다는 것. 경기 뒤 기자들의 인터뷰 때도 거의 말 한마디 하지 못해 듣는 사람들이 진땀을 흘렸을 정도. 그러나 지금은 과연 말더듬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소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제 그는 당당하게 무속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모시는 신은 장군신, 약사부처, 산신 등 여러 신들이다. 일반인이 듣기엔 황당하게 여겨질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기도 중에 의식불명 상태인 임수혁 선수를 찾아가라는 공수를 받았다고 한다. 마침 이날 저녁 TV를 켰는데, 임수혁 선수가 나오자 그를 낫게 하라는 약사부처의 계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병상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 모두 거절 당하기는 했지만.

레슬링 동료들은 농담처럼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 같냐고 묻기도 한다. 그의 대답은 “알고 있긴 하지만, 얘기는 못해준다”는 것. 금메달을 딴다고 하면 연습을 안할 것이고, 못 딴다고 하면 사기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열심히 싸우고 오라는 말만 건넬 뿐이다. 그래도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팀이 금메달 11개를 따내 종합 10위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를 보는 시선은 여러 갈래이지만 범상치않은 새 삶을 선택한 그를 사심없이 한번 지켜보자. 국가대표 레슬링에서 무속인으로 변신한 그의 신들림이 어느 정도 신통한지, 삶이란 게 얼마나 다양한지를 말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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