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떠돌이 맹인 무사가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은 사악한 깡패조직이 다스리고 있다. 자토이치라 불리는 이 맹인 무사, 어찌하다 보니 그 마을에 머물게 되고 깡패조직과 맞서게 된다. 자토이치는 깡패조직이 고용한 한 사무라이와 겨뤄 이기고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꾸준히 만들어졌던 ‘자토이치' 시리즈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와 유사한 구조의 이야기다.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리메이크한 ‘자토이치’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은 기타노 다케시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이 심심한 이야기로 된 영화의 매력의 원천은 주연을 맡았던 가츠 신타로라는 전설적인 배우의 카리스마에서 나왔다.
다케시는 자토이치의 카리스마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비장한 표정 대신 어딘가 모르게 산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는 심지어 진짜 맹인인지 아닌지도 헷갈린다. 주위에 벌어지는 상황에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종잡을 수 없이 전개된다.
피가 튀고 팔 다리, 목이 잘려 나가는 잔인한 칼 싸움 뒤에 넌센스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엉뚱한 유머가 튀어 나오더니 궁극에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를 옮겨온 듯한 화려한 군무 장면으로 매듭짓는다. 한 마디로 허허실실, 기타노 다케시는 천의무봉한 스타일로 관객과 함께 놀자고 작정한 느낌을 주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가 영광스러웠던 시대를 뒤로 했을 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예술가와 엔터네이너는 결국 이런 유형의 감독이 아닐까.
오우삼, 아니 존 우는 그와는 다른 길을 간다. 그의 영화는 점점 말랑말랑한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기계적으로 답습하고 있다.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페이첵’은 근사한 SF 영화가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의식적인 모방으로 가득 차 있다.
존 우가 잊은 것은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히치콕만큼 잘 찍을 수 있는 감독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존 우의 장기인 액션 장면이 눈을 휘둥그래지게 만들기는 하나, 너무 자주 나와 이제는 실소를 터뜨리게 되는 그의 유명한 ‘비둘기’ 장면처럼 ‘페이첵’은 닳고 닳은 스타일을 남용하는 단계에 들어선 오우삼의 위기를 드러낸다.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는 이런 유형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창작물이다. 아무 데서도 볼 수 없었던 영화, 독창성이 왜 훌륭한 재능의 표식인지를 알려주는 진귀한 예술품이다.
어디를 자극해야 눈물과 웃음이 나오는지를 영악하게 계산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이 영화는 여백이 넉넉한 그림체에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채워 넣은 이야기로 세상 삼라만상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만드는, 진정으로 온 가족용 영화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지난 설에 거실에서 아이들과 모여 앉아 욕지거리로 범벅이 된 액션 영화를 봤던 분들에게 영혼 세정제로 이 영화를 권해드리고 싶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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