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및 등록기업들의 대표적 자금조달 수단인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주식시장의 애물단지로 떠올랐다. 실적부진 탓에 일반 공모(公募)를 통해서는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주로 이 방식에 매달리면서 증자 과정에서 주가조작이나 주금 허위·가장납입 등 온갖 부작용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편법 판치는 제3자 유상증자
제3자배정 유상증자란 기존 대주주와 다수의 소액주주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공모하는 일반적 의미의 유상증자와는 달리 소수의 특정 투자자(제3자)에게만 증자를 실시하는 형태. 기업 입장에선 증자를 할 때 주간사를 따로 선정하지 않아도 되는 등 주식발행 절차가 간소한데다 일반 공모에 비해 실권(失權)이 발생할 우려가 없기 때문에 편리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주식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일반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보다는 제3자배정 방식이 크게 늘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거래소의 경우 지난 해 실시된 165건(13조6,960억원)의 유상증자 가운데 77%(금액기준 88%)인 127건(12조1062억원)이 제3자배정 방식이었다. 코스닥의 경우 제3자배정 방식은 2000년 201건의 유상증자 중 50건(24.8%)에 머물렀으나 2001년 149건 중 67건(45.0%), 2002년 123건 중 57건(46.3%), 지난해 303건 중 171건(56%)으로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하지만 제3자배정 방식은 사실상 사모(私募) 형태로 돈을 조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리감독이 허술한 점을 이용, 증자과정에서 각종 불법과 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 주금을 납입하지도 않은 채 '유령주식'을 발행해 파문을 일으킨 대호·동아정기·중앙제지·모디아 등도 모두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허점을 악용한 경우다.
심지어 동아정기의 경우 허위납입을 통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하면서 주식발행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가짜정보를 유포하는 등 주가조작까지 한 사실이 적발됐다.
사채업자한테서 잠시 돈을 빌려 주금을 납입했다가 즉시 인출하는'가장(假裝) 납입'도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주무대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적이 나쁜 기업일수록 가장납입을 통해서도 자금을 조달하려는 유혹이 빠지기 쉽다"며 "기업이 사채업자와 이면계약을 한 뒤 가장납입을 통한 유상증자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적발하기는 힘들다"고 실토했다.
금융당국, 부작용 방지책 부심
이 같은 편법적 유상증자의 피해자는 결국 해당주식에 투자한 소액주주들. 때문에 금융당국도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상증자 이후 일정기간 해당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예수'기간을 설정하는 방안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지나치게 싼 값에 주식을 할인발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는 게 당국의 기본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자금조달 수단인데 무턱대고 규제할 수는 없다"며 "현재로서는 허위 증자 여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라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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