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역사를 가지고 놀아보겠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황산벌’은 엄숙한 역사의 무대를 촌극으로 바꿔놓으며 역사에 대해 발칙한 질문을 서슴지 않는 영화다.
때는 서기 660년. 백제와 나ㆍ당연합군이 황산벌에서 대치한다. 계백 장군이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가족의 목을 내리치고, 화랑 관창이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 같이 버려야 한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군은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로 질펀한 욕대결을 펼치며, 실제 전투는 인간을 말로 쓰는 장기로 바뀌고, 계백은 가족의 목을 치려다가 아내에게 지청구를 당한다.
힘 있는 영웅 혹은 강대국의 시선이 아니라 민중의 눈으로 역사를 유쾌하게 뒤집어 보는 상상력이 독특하다. 당시의 정세 설명을 위해 각국 왕의 ‘정상회담’을 중계하는 것으로 문을 여는 영화는, 위급한 전황 가운데 계백 장군이 보잘 것 없는 백성 ‘거시기’를 고향으로 몰래 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오지명(의자왕), 김선아(계백의 처)를 비롯해 숱한 조연의 연기가 눈부시며, 산만할 수도 있는 역사의 잔줄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승자보다는 패자, 장군보다는 졸병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흔치 않은 영화다. 15세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윌리엄
‘황산벌’만큼 발칙한 영화는 아니지만, ‘기사 윌리엄’은 ‘황산벌’에 앞서 퓨전 사극이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관객의 눈길을 모은 영화다. 중세 유럽의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마상시합에 참가한 평민 출신 윌리엄의 성공담으로,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현대적인 대사로 맛깔스런 퓨전 영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기사의 시종이었던 윌리엄이 옷을 바꿔 입는 것만으로 기사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신분이란 허울 뿐인 명분이다. 게다가 영국 중세 시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의 첫번째 장인 ‘기사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영화는 시인으로 자처하는 주책 바가지 허풍쟁이 초서까지 등장시킨다.
그러나 과거 권위에 대한 도전이 이 영화의 본류는 아니다. 영화는 스포츠에 대한 젊은이의 관심을 그대로 사극으로 옮기려 한다. 권투 경기장의 장내 아나운서를 연상시키는 선수 소개,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지는 경기의 과정은 현대 스포츠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퀸의 ‘We Will Rock You’를 영화 음악으로 깔아놓으며 영화는 단숨에 고전극에 알레르기를 가진 관객을 끌어들인다. 물론 사극의 묘미가 현대극에서 상실한 웅장미라고 생각한다면 영화는 형편없는 싸구려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퓨전 사극은 분명 호오가 뚜렷한 장르다. 감독 브라이언 헬겔랜드. 주연 헤스 레저, 루퍼스 스웰.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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