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평에 오를 때부터 미디어의 넉넉한 눈길을 끈 강금실 법무 장관은 지난 한 해 동안 말 그대로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일개 부처의 장관이 이 만큼 전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받은 예는 이제껏 없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본인의 명확한 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둔 열린우리당이 그에게 구애를 멈추지 않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강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을 상징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러나 찬찬히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강 장관이 취임한 이래 법무부가 어떤 개혁을 실천했는지 짚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강 장관으로서는 검찰의 독립을 꼽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검찰의 독립이라는 명제는 관찰자에 따라 꼴이 제멋대로인 UFO에 가까운 것이다. 검찰은 과연 독립됐는가, 독립됐다면 어디에서 독립됐는가, 검찰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그 독립된 검찰은 최종적으로 누가 제어하는가 하는 여러 가지 미묘한 문제가 거기 개재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이 설령 독립됐다고 해도, 검찰을 독립시킨 것은 강 장관이라기보다 노 대통령이다. 그러니 그것을 강 장관의 개혁적 업적에 넣기는 좀 그렇다.
정부는 검찰이 독립됐다는 증거로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에 대한 과감한 수사를 꼽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야당의 세찬 원심력과 촘촘한 네트워크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검찰이, 독립됐든 안 됐든,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모른 척하고 넘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자는 '독립 검찰'이 지난해 이룬 가장 큰 '업적'으로 차라리 교포 학자 송두율씨의 구속·기소를 꼽고 싶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임명한 인권변호사 출신 장관의 감독을 받는 검찰은, 유엔마저 인권 침해의 위험이 크다며 개폐를 권고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도주와 증거 인멸의 위험이 전혀 없는 학자를 잡아가뒀다. 게다가 검찰은 이 늙은 학자의 '폭력'이 두려웠는지, '법무부 장관의 훈령으로 돼 있는 계호 준칙에 따라' 그를 포승으로 묶고 수갑을 채운 채 조사를 벌였다. '중죄인'답게, 변호인의 접견도 제한되었다.
'독립 검찰'의 힘과 의지는 송씨의 '죄'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오느냐를 부차적 문제로 만들었다. 검찰은 송씨를 구속하기 전부터 소설 같은 '피의 사실'들을 되풀이 흘렸고, 신바람이 난 언론 매체들은 이를 받아 송씨에게 여론재판의 십자포화를 퍼부음으로써 인격적으로 그를 살해하는 데 거의 성공했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 인권을 법무부의 중요한 관장 업무로 꼽았던 강 장관이 이런 상황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것은, 이 사태의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독일 정부와 학계에서까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저명한 학자의 인권이 이 지경이니, 힘없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인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과문 탓이기를 바라지만, 기자는 강 장관의 법무부가 이주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교도소와 감호소 재소자들의 참혹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들어본 바 없다. 인권과 관련해서 강 장관을 생각하면, KBS 텔레비전의 '열린 음악회'가 느닷없이 인권을 테마로 삼았을 때 그가 얼굴을 비친 것이 기억 날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기자도 강 장관에게서 눈부신 개인적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젊은 여성 장관으로서 그가 법무부와 검찰 내부의 텃세에 맞버티며 겪었을 마음고생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한다. 그러나 강금실 말고 다른 인물이 참여정부의 첫 법무 장관이 됐다면 검찰 개혁이나 시민들의 인권 상황이 달라졌을까?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까? 강 장관에게는 고깝게 들리겠지만,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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