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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가다피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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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가다피의 변신

입력
2004.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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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리비아를 방문한 미 의회 대표단에게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대표단장인 공화당의 커트 웰던 의원은 26일 "가다피 원수는 개방적이었다"며 "리비아 지도자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의원들도 매우 진지한 태도를 보인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했다.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한 청년 장교 가다피는 미국을 배척하고 전 세계의 혁명단체와 테러단체를 지원하면서 쿠바의 카스트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못지 않게 미국의 미움을 샀다. 미국은 1986년 4월 그의 은신처를 기습 폭격, 그의 양녀 등 30여명을 숨지게 하기도 했다. 그런 가다피가 지난 연말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한 데 이어 유엔의 WMD사찰을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미 의회대표단을 초청, 환대를 베풀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 행정부는 선제공격 위협과 경제봉쇄 등 압박외교의 성과라며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가다피 등 세계의 '반미 꼴통'들을 구제불능의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고 정권교체(regime change)와 축출을 꾀해 온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겐 가다피의 변신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들의 사고와 취향에는 사담 후세인 처리방식이 더 어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이라크전을 강행하기 전까지 미국은 유엔을 통한 압박으로 사실상 후세인을 무장해제하는 효과를 얻었다. 후세인은 유엔의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여 의혹시설을 공개했고 사거리 150㎞를 넘는 알 사무드 미사일도 자진 폐기했다. 그러나 미국은 만족하지 않고 WMD 완전 공개와 후세인의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후세인은 당시 "대량살상무기가 여인의 브래지어 속에 감출 수 있는 것이냐"며 항변했지만 결국 미국 첨단군사력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가다피의 변신이 북한 핵 문제 접근 방식을 놓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미국 내 강온파간 파워게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미국의 보수 강경파는 김정일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김정일 정권붕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보수성향의 한반도 전문가 마커스 놀랜드는 최근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라는 논문에서 북한에 대해 중국과 남한이 참여하는 완벽한 경제봉쇄가 취해지면 2년 내 김정일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100%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미국 주도로 세계의 '불량국가'들에 대해 취해진 경제제재는 역효과만 초래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무고한 일반국민들만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 받게 했을 뿐 정작 독재자에겐 타격을 입히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들의 체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카스트로의 쿠바, 후세인 체제하의 이라크, 팔레비 축출 후의 이란, 흑백 인종분리주의를 고수하던 시절의 남아공, 미얀마, 북한 등이 미국이 주도한 경제봉쇄로 경제가 피폐해져 수십 만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희생 당했다. 미국은 이들 나라의 인권을 문제 삼지만 굶어죽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인권은 무의미하다. 놀랜드가 주장하는 대로 북한에 완벽한 봉쇄조치를 취하면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수백만 명이 굶어죽을 수도 있다.

가다피의 변신은 채찍과 당근이 적절하게 배합되면 '악의 화신'들도 변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공개적으로 핵 능력을 과시하며 국제사회를 협박하고 있는 북한을 놓고 시간이 북한편이니 미국편이니 논란이 분분하지만 시간은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모두에게, 특히 우리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다.

이 계 성 국제부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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