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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17>스베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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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17>스베덴보리

입력
2004.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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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 1월29일 스웨덴의 신비주의자 에마누엘 스베덴보리가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1772년 런던에서 몰(沒). 스베덴보리의 생애와 사상에는 서로 화합하기 힘들어보이는 두 이미지가 버무려져 있다. 그의 전반기 삶은 엄밀한 이성에 기대지 않으면 영위할 수 없는 과학자의 것이었다. 수학·광물학·천문학·생리학·해부학·화학 등 방대한 분야에 걸친 그의 저작들은 스베덴보리라는 이름을 대뜸 르네상스 시기의 보편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위에 포개게 만든다. 스베덴보리는 더구나 열한 개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말의 귀재였다.그러다가 그는 어느 순간 신학과 형이상학으로 돌아섰다. 이 전향은 여느 신학자나 철학자와 달리 이성의 영역을 완전히 초월해버린 근본적 신비주의로 치달았을 만큼 과격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성서의 참뜻을 전해 들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새로운 교회가 출범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세계관은 기존 교회의 것과 어긋나는 데가 많았다. 그는 우선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부정했다. 그는 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이 인류의 죄를 대속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의 지옥에는 사탄이 없었고, 그의 천국은 현세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스베덴보리는 자주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깨어나서는 천국엘 다녀왔다고 주장했으며, 사람들 앞에서 예언과 투시를 행해보였다. 뒷날 정신분석학자들은 그가 분열증 환자였으리라고 추정했지만, 철학자 칸트를 제외한 당대 지식인들은 그를 '뛰어난 정상인'으로 존경했고, 그의 신학 저작들은 블레이크, 발자크, 보들레르, 네르발 같은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스베덴보리가 만년을 보낸 런던에서는 그의 사후인 1787년 그의 교리에 바탕을 둔 새 예루살렘교회가 설립됐고, 이 종파는 이내 미국으로도 퍼져나갔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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