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을 때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지만,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봄바람이었을까, 나는 그 무렵 학교생활에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교무실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저 선생님, 내일부터 학교에 안나옵니다" 지금도 당시 담임선생님의 황당한 모습과 교무실의 어색한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담임선생님으로서도 그럴 수밖에. 그야말로 문제학생과는 거리가 먼 모범생이었으니까.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담임선생님께서도 나의 단호함을 확인하셨는지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왠지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이미 결정한 것. 그 다음날, 농사 준비에 바쁘신 아버님께서 영문도 모르시고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그리고 어느 작은 다방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아버님께서도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셨다. 그냥 열심히 학교 잘 다니겠다고 하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아버님께서 아주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아들이 애비보다 배운 것도 많고 지금까지 아들을 믿었으니 지금의 결정도 믿겠다"는 것이었다.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도 잠시. 내 인생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그 후 난 대구에서의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버스로 4시간이나 걸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봄바람과 함께 시작된 자퇴소동은 긴 여름을 지나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다시 정상적인 학생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의 따뜻하고 지혜로운 배려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마음이 변할 것을 대비하여 자퇴가 아니고 휴학으로 처리해 놓으셨던 것이다.
봄바람 속에서 방황했던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숙하고 쑥스럽기까지 한 자퇴 결심이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끼게 해 주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냥 고향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연구원이 아니고 새마을 지도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회의를 느낄 때면 차라리 새마을 지도자가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웃음을 짓곤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대학입시 시즌이다. 대학을 결정하고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본격적인 인생을 갓 시작하는, 그래서 선택이 많지 않았던 젊은이에겐 더욱 그러하리라.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선택의 연속이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실수하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가 선택하고 그래서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처럼 정형화된 삶은 거부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삶은 아름답고 가치 있지 않을까?
임 상 호 한국과학기술연(KIST) 나노소 자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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