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차별금지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은 논리적이다. 차별은 배제 혹은 소외의 전단계적 평가이다. 따라서 불합리한 기준에 따른 차별이 금지될 때 비로소 참여를 통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차별금지의 기준으로 성별, 외국인 근로자, 장애, 지역, 학벌 등이 제시되었다. 차별금지를 위하여 극복되어야 할 장벽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국가와 사회, 법과 제도, 그리고 제도와 의식이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에 참여하여야 한다.오랜 동안 장애는 개인의 운명적 문제로 인식되었다. 장애에 사회적 낙인이 따랐으며, 따라서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의 가족 스스로가 장애를 사회문제화하는 데 주저하였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처방은 처음에는 주로 의료적 모델에 따랐다.
장애는 신체 및 정신적인 상태가 정상을 지속적으로 일탈하여 기능이 훼손되고, 그 결과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상태라는 인과관계 속에서 이해되었다. 의료적 조치를 통하여 장애를 예방· 치료하고, 적극적 재활조치를 취하여 장애인을 사회에 재편입시키는 것이 장애인정책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 인식 변화에는 장애인 스스로의 운동에 의하여 선도되었고, 또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장애인의 활동과 기능, 그리고 참여를 제약하는 원인이 기본적으로 장애인 자신의 특별한 상황에 있지만 이러한 특별한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 생활환경 역시 장애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게 인식 변화의 골자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장애인이 불편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면 장애는 극복된다. 역설적이게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의사소통과 이동의 수단이 첨단화할수록 장애인에 대한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장애인이 이러한 수단에 접근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장애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장애인정책의 변화는 오늘날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법제화하고 있다. 1990년 미국의 장애인법, 그리고 2000년 독일의 장애인평등법은 모두 장애인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극복하는 데에 중점을 둔 입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앞으로 해외 선진국과 같은 방향에 중점을 두어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스스로 갖는 낙인의식은 많이 사라졌다. 장애는 더 이상 동정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은 실패할 수 있고, 또 '나쁜 장애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장애인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하여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하다. 어떠한 장벽들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장애가 되는가는 장애인 스스로가 가장 잘 파악할 것이다. 이 점에서 장애인정책결정 및 장애관련입법에 장애인 스스로가 활발하게 참여하여 참여를 통한 사회통합이 도모되어야 한다.
장애인을 둘러싼 장벽을 허무는 작업은 국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위하여 비장애인은 불편을 감수하여야 한다. 학교는 장애인을 입학·교육시키기 위한 시설을 정비하여야 하며, 학부모는 같은 교실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자녀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사용자는 장애인을 차별 없이 고용하고, 장애상태에 적합한 시설을 갖추어야 하며, 통신사업자는 각종 장애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개발·시행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들이 장애인시설이 결코 장애인에 대한 구호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간접자본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전 광 석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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