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이다.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로 알려진 삼신인이 이곳에서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오곡을 가지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으면서부터 농경생활을 시작했고, 이들 삼신인이 제주도를 3개 지역으로 나눠 사이좋게 통치하였다고 전한다.삼성혈의 안내인은 이들이 발전시킨 탐라왕국이 단군조선과도 통상을 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으며, 주변의 나무들도 삼성혈에 경배하듯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말을 듣고 삼성혈 주위를 살펴보니, 정말 한 아름이 넘는 녹나무들이 추운 겨울에도 녹색잎을 반짝이고 서 있었다.
녹나무는 제주도 말로 녹낭이라고 하는데, 예전부터 죽어가는 사람 옆에 녹나무 껍질을 깔고 방에 군불을 때면 되살아난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런 탓에 많은 아름다운 녹나무림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 속설이 꼭 미신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서양에서도 녹나무의 학명을 Cinnamomum camphora라고 명명하였는데, 여기서 종속명으로 쓰인 camphor는 강심제 기능을 가진 이 나무의 성분에서 딴 이름이다.
제주도에는 집안에 녹나무를 들이지 않는 전통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나무가 귀신을 쫓아 제사를 모실 수 없다는 것이다.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녹나무는 죽은 사람도 살리니 귀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녹나무는 어떤 나무보다 향기롭다. 나뭇잎을 따서 향기를 맡아보면 숲의 신선함이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녹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녹나무과에 속한 나무는 모두 향기롭다.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생강나무나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비목나무가 모두 녹나무과에 속하는데, 향기가 특히 좋다. 필자는 산에서 탈진한 사람을 보면 이 나뭇잎의 향기를 맡게 하여 원기를 돋우어 준다.
삼성혈의 녹나무림은 도시 한복판의 평탄지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은 물론 제주시민들도 많이 찾는다. 삼성혈이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적지 보호차원에서 숲 주변에 담장을 치고 산책로를 설치하여 사람들의 답압(踏壓)을 방지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삼성혈숲의 토양은 낙엽이 쌓이고 유기물이 풍부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숲 바닥에는 맨 땅이 드러난 곳도 있으나 송악, 계요등, 자금우, 닭의장풀, 맥문동 등의 식물이 어느 정도 덮어 주고 있고, 노령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람들의 영향을 적게 받아 생육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특히 녹나무림 주위에는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등의 상록활엽수들이 어울려 숲의 깊이를 더해준다. 거대한 나무줄기가 기묘한 형상으로 비틀어진 팽나무와 하늘 높은 곳에서 바늘잎이 반짝이는 거대한 곰솔들이 어울려 숲의 신비감을 더하기도 한다. 더구나 녹나무 거목에 자라고 있는 콩짜개덩굴과 일엽초 역시 상록이기 때문에 한 겨울에도 녹색 보석으로 주렴을 만들어 달아 놓은 것처럼 생기를 자아낸다.
이 녹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큰 나무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목으로 기록되어 민간신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아무쪼록 세분 성인의 탄생지와 함께 녹나무의 거룩함이 길이 보전되고, 사라진 녹나무림도 복원되어 우리 자손들이 이 땅의 신성함을 길이길이 느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신 준 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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