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정성을 다해 갈고 닦으면 그게 바로 보석이다." 남원의 목기장(木器匠) 박형준(朴亨俊)은 생전에 그런 마음을 목기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뒤를 이어 4대째 목공예 일을 하고 있는 만수(萬修·31)·만호(萬鎬·29) 형제에게 그 말은 바로 유훈이 됐다. 둘은 작업이 뜻대로 안되거나 싫증이 날 때마다 선친을 떠올리고 자세를 다잡는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저와 동생이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룩한 명성과 예술적 자산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겁니다. 우리 형제가 처음으로 의기가 투합된 거지요." 형 만수씨는 가업계승의 과정을 그렇게 설명한다.목기의 고향 남원은 물론 전국에서 알아주던 목기장 박형준은 9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난숙한 솜씨를 구사하던 쉰 여덟의 한창 나이였다.
"지산공예는 이제 끝났어. 젊은 친구들이 무얼 알겠어." 이런 말이 나돌았다. 형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었다. 그런 우려와 '다른 시각'에서 쏟아지는 관심을 극복하기까지 숱한 시련과 맞닥뜨려야 했다. 다행히 타고난 재능과 선친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각오가 큰 힘이 됐다.
둘의 작업은 분업으로 진행된다. 형제가 아니면 이뤄지기 어려운 협력체제인 셈이다. 옻칠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형은 칠장(漆匠)을 목표로 삼고 있고 나무 다루는 재능이 탁월한 동생은 선친을 뛰어넘는 목기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목기는 목기장과 칠장의 솜씨가 조화를 이뤄야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다. 동생이 작품을 빚어내면 형은 옻칠로 영생의 옷을 입힌다.
동생 만호씨는 최근 20합 바리를 깎았다. 바리는 절집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식기다. 보통 밥·국·물·찬 그릇의 4개로 이뤄져 4합이라고 부른다. 선친도 15합 바리까지 만들었지만 만호씨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20합 바리 제작은 동생이 아마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형의 자랑스러운 설명이다. 오리나무를 원목으로 쓰는 바리를 제대로 깎는 목기장은 남원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다. 단순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힘들고 정교한 작업이 바리깎기다.
20합 바리 중 가장 큰 것은 지름 22cm로 그 안에 나머지 그릇이 차곡차곡 포개진다. 가장 작은 종지는 지름 4cm에 불과하다. 만호씨의 도전은 언젠가 작업장을 찾아온 한 스님의 말에서 비롯됐다. 그는 40합, 50합짜리 바리에 관한 기록도 있다고 한 마디를 던졌고 그 말이 창작욕을 자극했다.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지산(智山)공예는 천년고찰 실상사와 마주하고 있다. 덕유산의 마지막 자락과 지리산의 첫 줄기가 만나면서 병풍처럼 휘돌아 감고 있는 마을이 산내면이다.
"아버지는 원래 저희들이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심지어 이 일(목공예)하고 도둑질만은 결코 배우지 말라는 말까지 했거든요. 나중에 그런 마음이 바뀌긴 했지만…."
목기제작은 증조할아버지가 처음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대에 와서 가업으로 정착됐다. 남원에는 대물림으로 목기제작을 하는 집이 여럿 있지만 직계로 4대째 전통을 쌓은 곳은 이들 형제의 집안이 유일하다고 한다. 줄여 잡아도 한 세기가 넘는 전통은 큰 자산이다.
95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목기장으로 지정된 박형준은 작업 중에는 자신을 바깥세상과 철저하게 단절시킨 장인이었다. 그 흔한 공모전 출품도 좋아하지 않았다. 목기마다 장인의 정성과 혼이 스며있는데 세속의 잣대로 평가하는 방식이 달갑지 않았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간혹 "삼부자가 함께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비로소 형제가 가업을 이어갔으면 하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그의 도법(刀法)은 신기에 가까웠다는 것이 세인의 평가였다. 두 아들에게 "바리 깎는 비법을 가르쳐 줄 게 있는데…"라고 했지만 정작 물려주진 못했다.
남원옻칠문화원 부원장이자 남원목공예협의회 산내특산단지 회장인 만수씨는 올해 대학에 진학한다. 이론과 실기를 접목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만호씨도 선친이 대학진학 대신 옆에서 일을 거들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한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갈등 끝에 입대 전까지 3년간 일을 배웠다. 이들의 생각에 선친보다 더 뛰어난 스승은 없지만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사사할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산공예 제품은 무척 비싸다. 하지만 같은 물건인데 왜 비싸냐고 불만을 표시하는 고객은 없다. 제기(祭器) 한 벌(30∼40합)에 평균 200만원 선이고 비싼 것(50합)은 700만원까지 한다.
지난해 태풍 루사는 형제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선친이 남긴 작품들을 한 점 남김 없이 싹 쓸어간 것이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와 이들 형제의 4대가 각기 만든 함지박은 가보나 다름 없는 기물인데 그 것마저 앗아가 버렸다.
장인의 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한 산의 정상에 오르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바로 앞에 끊임 없이 펼쳐진 능선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형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창작력과 도전의식에 불을 지핀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제기 한벌 제작에 꼬박 1년소요
은은한 향이 감도는 남원의 목기는 한국의 전통미를 간직한 공예품이다. 목기는 제기와 바리가 대표적 제품인데 원목절단, 초벌깎기, 재벌깎기, 칠하기의 4단계를 거쳐 태어난다.
절단은 채취한 원목을 만들고자 하는 기물에 어울리게 자르는 작업이다. 초벌깎기는 기물의 모양과 비슷하게 원목을 다듬는 공정이다.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재벌깎기다. 칠하기 전의 완성된 목기를 백골(白骨)이라고 부른다. 옻칠은 기본이 5, 6차례이고 8번까지 하기도 한다. 칠하면서 말리기를 반복하는데 보통 40일 걸린다. 건조장의 조건은 섭씨 15∼25도, 수분은 60∼70도가 이상적이다. 옻은 강원도 원주산을 제일로 친다. 남원 인근의 함양군 마천면, 칠곡군도 생산지다.
화학칠은 한 관(3.75kg)에 2만원에 불과하지만 옻칠은 싼 게 30만원이고 원주산은 120만원으로 껑충 뛴다. 옻칠한 목기는 2∼3년이 지나면 은근한 붉은 빛이 감돌면서 아름다움의 농도가 더욱 짙어진다. 옻이 피어나는 것이다. 제기 한 벌 제작기간은 길면 원목채취부터 꼬박 일년이 걸린다. 초벌깎기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50일 이상이 소요된다.
제기는 노간주나무, 바리와 상은 오리·은행나무, 호리병은 가죽나무, 제기와 가구는 물푸레나무가 제격이다. 괴목(회화나무)은 나무의 결을 살려 가구를 제작하는데 좋다. 원목채취는 낙엽이 진 11월이 가장 적기다. 목기는 원목의 건조상태가 생명이다. 채취한 원목은 대략 3개월 정도 건조과정을 거친다.
설과 추석을 전후로는 제기의 수요가 많지만 평소에는 각종 상이나 찬합 찻잔 쟁반 술병 등 다양한 제품이 나간다. 남원시에는 산내면, 운봉면, 조산동, 어현동에 4개의 특산단지가 조성돼 있으며 공방만 120여 개에 달한다. 제기는 남원산이 전국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며 바리는 80%이상을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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