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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실은 섬세한 편이에요" 권상우 /그를 읽는 키워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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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실은 섬세한 편이에요" 권상우 /그를 읽는 키워드 5

입력
200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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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권상우)가 골 밑으로 단독 드리블한 뒤 덩크슛으로 연결하는 순간 박수가 쏟아졌다. 현수가 처음으로 상의를 벗고 거울 앞에서 쌍절곤 연습을 할 때도 함성이 터졌다. 옥상 위에서 현수가 선도부장 종훈(이종혁)을 향해 이단 옆차기를 날릴 때 관객은 발을 굴렀다. 관객은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를 두 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는 피와 눈물로 얼룩진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첩으로, 또 하나는 권상우가 보여준 육체의 파노라마로. '말죽거리…'는 권상우(28)가 눈부신 몸과 수줍은 내면을 제대로 보여준 최초의 영화일 것이다. 권상우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현수가 그대로 자라 대학생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짙은 눈썹, 긴 손가락, 입술을 살짝 비트는 부끄러운 듯한 웃음이 현수 그대로였다. 권상우를 말하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뽑아보았다.1 극과 극

권상우는 긴 손가락 끝을 잡아 뜯으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이소룡보다 잘 가꾼 남자다운 몸매에 손을 뜯는 습관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유하 감독은 권상우의 얼굴에 '어수룩한 인상의 터프가이'라는 반전의 재미가 있다고 했다. 엽서에 꽃을 붙여 사랑의 사연을 방송국에 보내고, 쌍절곤으로 '학교짱'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은 극과 극이다. 이것은 권상우이기에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권상우는 지난해 8월 한남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동양화 전공 출신의 미술학도이기도 하다. 성룡의 영화에 열광하며 자랐으면서도 '시네마 천국'을 열 다섯 번이나 보는 상반된 취향도 그러니 이해가 간다. "저는 섬세한 편이에요. 데이트가 있으면 이벤트도 준비하고 선물도 작은 거라도 장만하고."

2 승부욕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우뚝 섰지만 그는 아직 '쌓인 게 많다'고 했다. "'동갑내기…'가 호응을 많이 받았는데 영화계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상도 타지 못해 불만이 많았어요. 이번엔 그걸 극복해 보고 싶었어요." 권상우는 두루 욕심을 내비쳤다. "박해일이나 조승우 같은 배우는 사람들에게 연기력을 각인시켰는데…. 전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지기 싫어한다'는 성격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나왔다. 질문만 받던 권상우가 처음으로 질문을 했다. "(관객이) 얼마나 들 것 같아요?" 그는 "관객 수보다도 유하 감독이 이 영화로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자문자답하며 에둘러 욕심을 드러냈다.

3 콤플렉스

'발음이 샌다', '혀 짧은 소리가 난다'는 권상우의 잘 다듬어진 몸매와 함께 그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배우로서는 부끄러운 평판이지만 권상우는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그걸 방관한다면 게으른 연기자겠죠. 그런 것에 스트레스 받고 창피해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어요. 그게 나만의 묘한 매력이라고. 나 자신을 속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는 주문한 김치볶음밥을 3분도 안 돼 다 비우고 국수에 젓가락을 댔다. "논산 조교 출신이라서요. 빨리 안 먹으면 혼났어요." 권상우는 나이를 먹고 싶다고 했다. "서른 셋은 되어야 멋있을 거예요. 빨리 결혼하고 싶고 남자 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이 먹는다는 두려움은 없어요."

4 몸

얼굴로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짓지만 그의 육체는 이미 '남자 냄새'가 펄펄 난다. "몸을 억지스럽게 보여주는 영화는 아닌데요." 그는 멋쩍어 하면서도 "배가 볼록 나온 사람이 현수를 했으면 어울리지 않았겠죠"라면서 은근히 몸을 자랑했다. 권상우는 덩크슛, 쌍절곤, 이단옆차기 등 고난도 액션을 모두 대역·와이어 없이 소화했다.

그의 육체적인 매력과 더불어 '반짱'인 우식 역이 그에게 더 잘 맞았으리란 짐작은 자연스럽다. "더 어울렸겠죠. 그러나 얻을 게 없었을 거예요." 떡볶이 집 아줌마 역을 맡아 오랜만에 컴백한 김부선과의 러브신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런 장면은 처음이라서요. 슬픈 장면이거든요. 선배님이 적극적으로 찍으셨죠. 저는 수동적으로…."(웃음)

5 용암

유하 감독에 따르면 극중 현수는 소심하지만 '마음에 용암이 있는 아이'다. 마음 속 용암으로 따지면 권상우도 결코 그 열도에서 현수에게 밀릴 것 같지 않다. 그의 용암은 식을 줄 모른다. "'권상우가 하는 게 가장 잘 어울릴 거 같애', 어떤 영화든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화산고'로 데뷔 시절 "고개 45도 돌려"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그 지시대로 '기계적으로' 연기를 했다던 그다. 마음 속 용암이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 것이다.

그는 옥상 결투 장면을 찍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울었다고 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운 적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소심한 학생이 사악한 학교짱을 옥상 위로 불러내 혼을 내준다'는 판타지가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흘린 눈물 때문일 것이다. 관객이 권상우와 함께 '옥상'에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도.

/이종도기자 ecri@hk.co.kr

사진=김현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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