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모바일 제품의 세계에도 '얼짱' 바람이 불었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기능'이라는 전통적인 선택 기준 대신 세련된 외모로 승부하는 얼짱 제품들이 분야별 베스트셀러로 꼽히고 있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기존 모습을 버리고 새 얼굴로 갈아입는 제품들도 등장하고 있다.외모가 곧 기능이다
어느새 젊은이들의 모바일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디지털카메라 분야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제품이 니콘의 '쿨픽스 SQ'.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정사각형 모양에 납작한 외형이 특징으로, 주머니나 가방에 넣기 쉽다. 렌즈의 방향을 180도 돌려 셀프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다른 제품과 비교하면 5∼10만원 이상 비싼데다 성능도 별차이가 없지만 세계적 히트 상품이 됐다.
휴대폰 시장에서도 외모의 호소력은 강력하다. 삼성전자 휴대폰 E3200은 기능상으로 평범한 제품이다. 30만 화소 카메라에 64화음, 16컬러 유기EL 화면 정도지만 외모 하나는 중뿔나다. 깔끔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이 유럽 시장에서 '명품'의 평가를 받았다. 국내 독점공급을 받고 있는 KTF는 이 제품을 번호이동성 마케팅의 간판 모델로 내세웠다.
모토로라의 경우 단종된 '스타택'(Startac)의 후속작을 내놓기로 했다. 기능은 이미 구식이지만 독특한 외모가 지닌 멋 때문에 국내에만 40만명이 아직도 스타택을 애용하고 있다.
MP3플레이어 분야에서는 외모가 기능을 압도한다. 아이리버의 성공 이후 MP3 업체들은 동일한 기능에 외형을 일신한 '페이스 리프트'(Face lift) 모델을 쏟아냈다. 원통형 목걸이 스타일의 뻔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슬라이드형, 스틱형 디자인이 등장했고, 클래식한 풍취의 복고적 모델도 나왔다. 업체들 스스로 '음질보다 중요한 것이 외형'이라고 자인할 만큼 MP3 업계의 디자인 경쟁은 치열하다.
외모에 따라 흥망이 좌우
모바일 제품의 외모 경쟁력은 때때로 업체의 흥망을 좌우한다. 윈도 PC와의 경쟁에서 뒤처져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던 애플컴퓨터는 아이맥(iMac)의 디자인을 물려받은 '아이북'(iBook) 노트북PC와 '아이포드'(iPod) MP3 플레이어로 부활했다. 이들 제품은 흰색과 은색, 투명 플라스틱의 3가지 컬러에 간결주의(미니멀리즘)에 기초한 세련미를 바탕으로 2003년 미국 모바일 제품 인기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이리버도 유사한 사례다. 미국 뉴욕의 디자인 전문업체 '이노디자인'이 개발한 프리즘형 스타일은 목걸이형 제품을 낳으면서 MP3 제품의 신기원을 열었다. 초기의 조악한 디자인에서 면모를 일신한 이후 아이리버는 10∼20% 비싼 가격을 받으면서 불티나게 팔린다.
반면 외모를 소홀히 했다가 후발업체에게 밀려난 기업들도 있다. 소닉블루의 '리오'는 MP3 시장을 연 초기 제품이지만 워크맨을 연상시키는 둔탁한 외형 때문에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고 중위권 브랜드로 내려앉았다. 모토로라와 에릭슨 역시 막대형 디자인과 흑백 화면에 집착하다가 노키아, 삼성전자 등에 추격을 허용했다. 모토로라는 노키아에 선두 자리를 뺏겼고, 에릭슨은 삼성전자, LG전자에 차례로 밀려난 후 소니에 합병됐다.
모바일 제품은 '패션 액세서리'
모바일 제품이 다른 정보기술(IT) 제품보다 유독 외형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느새 액세서리의 특성을 지니게 됐기 때문이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노출이 많이 되기 때문에 소유한 사람의 개성과 일치되는 효과를 낳는다. 이에 따라 외형과 디자인 자체가 제품의 주요 기능이 된다. 마치 손목시계가 목걸이에 버금가는 패션 소품이 된 것과 같다.
인체공학적 설계나 특별한 기능을 목표로 삼는 '기능형 디자인' 조류도 모바일 제품의 외모를 강조한다. 바야흐로 외모가 기능에 선행하는 시대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경향을 뭉뚱그려 "모바일 제품의 전 영역에서 기능과 디자인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며 "모바일 제품의 아름다움은 곧 기능"이라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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