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北野武)는 "그(가쓰 신타로)가 죽었기 때문에 다시 만들기로 했다"는 말로 리메이크의 이유를 밝혔다.그것이 공연한 말이 아니었다. 기타노 다케시가 감독과 타이틀 롤을 맡은 '자토이치'는 일본 검객 영화의 비장함에 그것이 지나쳐 만들어내는 코믹함까지를 한데 아우르고 있다. 검객 영화가 원재료지만, 코미디 뮤지컬의 맛이 나는 묘한 퓨전 영화다.
노랗게 물들인 상고머리, 검은 옷의 자객 자토이치. 떠돌이인 그는 어느 마을에서 거리의 야쿠자에게 시달리는 행상 여인을 도와주고 그녀의 집에 기숙하게 된다. 어전의 사범이라는 신분을 버린 유랑 자객 핫토리 겐노스케(아사노 다다노부)는 폐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일거리를 찾아 이 마을로 찾아 들고, 게이샤 남매 역시 이 마을에 도착한다. 야쿠자 긴조의 하수인이 된 핫토리, 긴조의 손에 부모를 잃은 게이샤 남매의 원수를 갚아주러 나선 자토이치. 두 사람은 예정된 듯 최후의 일전을 겨룬다.
기타노 다케시는 검객, 게이샤, 부모의 한 풀이 등 전통적 검객 영화의 구성 요소로 정극을 완성해 가면서 여기에 '파격'으로 한껏 재주를 뽐낸다. 비장하게 결투를 신청하는 야쿠자들은 칼을 폼 나게 뽑으려다가 옆의 동료를 찌르고, 결투에 나선 핫토리의 머리 속 상상은 구체적으로 재현된다. '내가 칼을 뽑으면 저기서 이렇게 나올 것이고, 내가 이렇게 찌르면 내가 이기겠지' 식의 생각이 화면으로 표현되고, 이어지는 실제 대결 장면에서 자토이치는 새로운 검법을 구사해 적의 허를 찌른다.
주사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듣고도 '홀·짝'을 맞춰 도박에서 판돈을 싹쓸이하는 자토이치가 반칙을 쓰는 도박장 무리들을 일거에 쓸어 버린 후, 야쿠자 일당이 마을을 포위하자 자토이치가 마을을 빠져 나가는 방법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자토이치의 감은 눈 위에 게이샤의 분으로 눈을 그려 넣은 것. 이런 깜찍한 발상은 마지막의 탭 댄스 장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동네 촌부의 곡괭이질을 타악에 빗댄 감독은 온 마을 사람들의 흥겨운 잔치 한 판에 일정한 박자를 부여하며 난장을 어느새 흥겨운 탭댄스로 탈바꿈 시킨다. 장님에 눈을 그려 넣으면 눈 뜬 것처럼 보이고, 난장판도 박자만 맞추면 멋진 댄스가 되듯, 세상의 카오스란 어느새 코스모스가 아니냐고 되묻는 듯 하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가 유혈이 낭자하며 동시에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듯 하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2월20일 열리는 일본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30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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