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 주어진 대표적 특권은 늦은 기상이다. 주요 일과는 아르바이트나 취업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생활정보지 수집이고,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활동은 방안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이며, 떡진 머리나 새집을 이룬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다.청년 실업자 100만 명을 넘는 시대.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백수 노릇을 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일상과 애환, 고뇌를 보여주는 만화 세 권이 잇달아 나와 눈길을 끈다.
'미련 곰씨와 싸가지 오리군의 좌충우돌 백수일기'라는 부제를 단 '곰씨와 오리군'(핫도그 글·그림, 해냄 발행)은 백수 3년 차인 두 취업 준비생의 애환을 다룬 만화다.
자취생활을 하며 꾸준히 취업준비를 하는 곰씨와 항상 빈둥대는 오리군의 대조적 모습을 그렸다. 곰씨가 취업준비서를 들여다보며 1년을 준비하는 반면 오리군은 퍼즐이나 종이접기 책을 보며 1주일은 심심찮겠다는 마음이다. 감기 알약세기, 휴지 말았다 다시 감시, 천장 무늬 세기가 오리군의 취미다.
백수에겐 1년 365일이 쉬는 날이지만 그들도 토요일을 기다린다. 그러나 뭐 크게 다른 건 없는 날이다. 그러나 그들도 뼈 속까지 백수라고 느낄 때가 있다. 집안에서 놀고, 먹고, 싸고, 뒹굴다가 라면 사러 나가다가 3일 간 문을 열지 않았음을 발견할 때다. 어느날 아침 옥상에 올라 간 곰씨와 오리군. 담배를 피며 아래를 내려다 보던 오리군이 말한다. "야, 여기서 보니까 한눈에 다 들어와서 좋구나. 저기 빨간 옷 죽이지 않냐?"" 근데 쟤네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다들 어디 가는 걸까?" 문득 둘은 깨닫는다. "출근이라고… 아침에 직장에 나가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었지… 너무 놀아서 감을 잊었구나…"
'귀차니즘'이란 신조어를 유행시켰던 스노우캣 시리즈 2탄 '스노우캣 다이어리 2권'(권윤주 글·그림, 호미 발행)은 백수를 의인화한 고양이를 통해 그들의 게으른 일상을 보여준다.
"일을 안 해도 쉬고 싶을 때가 있는 거야." 머리가 자주 아프고 쉽게 지치는 스노우캣. 집에서는 눕거나 엎드려 있고, 모처럼 밖에 나가면 혼자 있는 구석진 곳만 찾는다. 무엇이든 귀찮아 하며, 하고 싶지 않은 건 안 하려 드는 것이 특징이다. 방안으로 들어온 엄마가 누워있는 스노우캣에게 말한다. "빈둥거리는 거 보기 싫으니까 제발 어디든지 나가라" 스노우캣이 발견한 법칙 하나는 '엄마는 항상 내가 누워 있을 때만 들어온다'는 것. 그는 몇 년 전 여름에 방학 내내 두 달 동안 현관문 밖을 한번도 안 나갔던 적도 있었다.
'우주인'(이향우 글·그림, 길찾기 발행)은 자기를 '우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백수의 삶을 그렸다. 어느날 개와 함께 세상 구경을 나간 우주인은 "그 개도 뭔가 할 줄 압니까"라는 말을 듣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세상이 참으로 각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기 신발을 던진 후 개에게 물어오라고 시키면서 자신이 개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을 느낀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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