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27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 의장 김태홍, 실행위원 신홍범, 한국일보 편집부 기자 김주언 세 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기소됐다. 이들은 그 전 해 9월 언협 기관지 '말' 특집호에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뒤 몸을 피했다가 12월에 차례로 체포·구속되었다. 보도지침이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이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보낸 보도 가이드라인이다. 그러나 문공부 홍보조정실은 이 악명 높은 지침의 형식적 소관 부처였을 뿐, 그 내용을 실질적으로 결정한 것은 청와대 정무비서실이었다. 김주언은 1985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한국일보 편집국에 전달된 보도지침을 복사해 언협에 전달했고, 언협의 김태홍·신홍범이 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보도지침이라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이 지침은 '가(可), 불가(不可), 절대불가' 등의 구분을 통해서 보도할 수 있는 사건과 보도해서는 안될 사건을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보도의 방향과 형식, 분량까지 결정해 전달함으로써 정부가 신문·방송의 편집·제작을 사실상 지휘하는 통로 구실을 했다. 예컨대 김대중 사진 불가, 대통령(전두환)의 기내 사진에는 비치된 '목민심서'가 나오도록 할 것 등의 보도지침이 해당일의 보도에 그대로 반영됐음이 '말' 특집호를 통해 밝혀져 시민들에게 실소와 분노를 자아냈다.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세력은 정통성 부재(不在)를 꺼림칙해 했고, 이것을 언론통제를 통한 대중조작으로 보완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1987년 6월3일 서울형사지법은 김태홍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김주언에게 징역 8월 및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1년, 신홍범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으나, 김영삼 정부들어 대법원은 이들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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