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직전 경제를 걱정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경제·경영학 교수들은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배를 운전하는 선장이 잠을 자고 있으니, 그를 깨워 배를 제대로 이끌고 가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이제는 제발 대통령이 딴 곳에 한눈을 팔지 말고 오직 경제살리기에만 매진해달라는 간곡한 호소다.체감경기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지금, 대통령과 정부의 역량을 경제살리기에 '올인'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국민적 바람이다.
다행히 노무현 대통령도 새해 벽두부터 경제와 민생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년 연두기자회견의 대부분을 경제문제에 할애했고, 취임후 처음으로 전경련 회장단과 오찬을 가지며 경제활력을 찾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최근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과연 현 정권이 살리려는 것이 경제인지, 총선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경제부총리의 총선 차출설부터 그렇다. 경제살리기를 한다면서 경제팀장부터 총선에 징발한다면 누가 정부 말을 믿겠는가. 제발 정치싸움은 그만하고 경제 좀 돌보라고 민심은 절규를 하는데, 총선 승리만을 위해 장관들을 장기판 말처럼 이리저리 돌린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변명은 있다. 여소야대에 발목이 잡혀 집권한 지 1년이 지나도록 무엇하나 제대로 한 일이 없으니, 국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개혁도 끝이라는 논리가 '총선 올인'을 정당화하고 있다. 차마 노골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여권의 총선 승리가 바로 경제살리기'라는 말이 입가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주장은 정치적 안정을 통한 경제발전을 집권 명분으로 삼았던 과거 군사독재의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최근 경제현안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선심성 대책을 잇따라 쏟아내는 것도 총선용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한다.
청년실업을 덜기 위해 공공부문에 8만개의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나,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근로자 정년을 의무적으로 60세까지 연장을 검토한다는 발표 등이 그렇다. 정년을 연장해 고령자들의 일자리를 늘리면 그만큼 젊은층의 자리가 줄어들 것이 뻔하고, 공무원을 제외한 민간기업에서는 정년규정이 사문화한 지 오래인데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른한 진통제가 아니라 고통스런 외과수술이 필요하다.
실업대책만 하더라도 예산만 낭비하는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왜 기업들이 국내에는 투자를 안하고 해외로만 나가는지, 젊은이들이 왜 중소기업을 기피하는지를 파악해 근본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
지난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4만개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은 정부의 가계대출, 카드정책 실패로 내수경기가 추락하면서 그만큼 서비스분야에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 한 몫을 했다. 부실덩어리로 변해버린 카드업계는 지금도 구조조정으로 실직자를 쏟아내고 있다. 차라리 이런 정책 실패의 재발을 막는 내부 시스템 개혁이 정부가 해야 할 실업대책이다. 그렇게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설 때만 국민들은 정부가 경제살리기에 나섰음을 믿고, 따를 것이다.
배 정 근 부국장겸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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