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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 본다]<4>1부 일본은 죽었는가?-일본의 저력 ③ 소프트파워 강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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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 본다]<4>1부 일본은 죽었는가?-일본의 저력 ③ 소프트파워 강국 일본

입력
200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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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발전 정도가 높아질수록, 물질적, 물리적 가치를 넘어선 문화적, 정신적 가치에 대한 기대는 높아진다.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하드파워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가치, 브랜드 가치 등 소프트파워의 비중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와 네트워크화가 진전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소프트파워는 한 나라의 이미지와 대외적 영향력을 강화하는데도 기여한다.일본은 단지 경제대국일뿐만 아니라 이러한 소프트파워의 면에서도 만만치 않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일찍이 서구세계가 바라본 일본의 이미지에는 신비와 동경의 요소가 깃들여 있었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이미지는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형성된 것으로, 오리엔탈리즘이나 이국 정취에 대한 호기심의 산물이라는 한계를 지니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소프트파워는 지구촌의 일상생활 곳곳에 파고든 문화산업의 힘을 중심으로 새롭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일본 문화산업의 실력은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2003년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상 및 2002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최근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탄생 40주년을 넘어선 '우주소년 아톰'(Astro boy)은 일본문화산업의 짧지 않은 역사와 탄탄한 기반을 잘 말해준다. 2002년 전세계 검색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는 '드래곤볼'이었으며, 지구상에서 방영되는 TV 애니메이션프로그램의 60% 이상이 일본제라는 집계도 있다. 60년대의 '아톰' 이래 70∼80년대의 '플란다스의 개' '도라에몽' 90년대의 '세일러문' '드래곤볼' '공각기동대' 등은 구미와 아시아를 넘나들며 일본을 애니메이션 대국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국내시장을 기반으로 거대규모로 성장한 일본의 만화는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이고 공식적인 대외수출에 나섰다. 5개의 대형출판사가 아시아 각국에서 출판계약을 맺은 것만도 약1만 타이틀(25만권)로 추정되며, 라이센스매상은 약 40억엔(약 400억원), 판매매상은 약 800억엔에 이른다. 구미지역에서도 80년대 이후 '아키라' '루팡3세' 등이 매니아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게임은 본래 1960∼70년대까지 미국이 강세였으나, 7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이 힘을 쏟아 닌텐도, 세가, 소니 등이 전세계 가정용 비디오게임기 시장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근년에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과의 융합이 진전되면서 콘텐츠 및 캐릭터를 다목적으로 개발하는 비즈니스모델이 탄생하였다. '포켓몬스터'는 그 대표적인 예로 출시 이후 2조엔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대중문화상품의 열성 매니아층을 의미하는 90년대 신조어 '오타쿠'는 전세계에 퍼졌다. 세계 각 도시에 일본대중문화 매니아들을 상대로 한 만화 및 캐릭터 상품점이 들어섰을 정도다. 또한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분야 외에도, 국제영화제에서의 잇단 수상 실적이나, 미국에 뒤이어 세계시장의 17%를 차지하는 음반시장의 규모와 제작수준 등 문화산업 전반의 실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 문화산업이 거두는 경제적 수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향유자들이 부여하는 문화적 가치이다. 일본의 문화상품들은 구미 지역에서 '멋지다(cool)'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만 홍콩 중국 등 아시아지역에서는 음악, 인기캐릭터, TV드라마, 패션잡지 등의 분야에서 모두 일본제에 대한 선호도가 구미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거품경제붕괴 이전에 욱일승천하던 일본은 물건이나 돈의 영역에서 실력을 발휘했지만, 그 결과 무역마찰이나 상대방의 경계심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산업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소프트파워는 긍정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한 국가의 틀 속으로 귀속될 수 있는 것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무형의 자산으로서, 또 일본의 새로운 국가브랜드로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자신의 소프트파워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문화산업 부문간의 연쇄효과, 디지털콘텐츠의 고수익성, 성숙한 국내 문화애호가층의 존재 및 팬들과의 긴밀한 연계의 전통 등 자신의 강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파워는 단지 문화산업의 힘만으로, 그것도 일조일석에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문화 전반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30년 전인 1970년대부터이다. 이때부터 이미 국가적 차원의 대외문화정책이 본격화되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일찍부터 '삶의 질' 향상을 표방하며 도서관, 문화회관, 콘서트홀, 박물관 등 문화 관련 하부구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기업 차원에서도 문화상품 및 문화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80년대 이후에는 다종다양한 기업문화전략 및 문화지원사업으로 전개되었다. 일반시민들도 물질적인 풍요를 넘어선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면서 지역에 마련된 문화공간을 적극활용하고 써클, 동호회 등 각종 형태로 일상생활 속에서 자발적인 문화활동을 펼쳐 나갔다. 현재의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와 국내적 문화기반은 이처럼 다방면에 걸친 지속적 노력을 통해 축적된 것이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눈 앞의 수익만을 노리는 근시안적 면모를 띠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대내외적으로 문화 전반의 내실을 기하는 넓은 시야와, 몇십년을 내다보는 긴 호흡이 필요할 것이다.

이 지 원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일본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 및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등 역임 논문 "현대 일본의 자치체 개혁운동-혁신 자치체와 시빌미니멈을 중심으로"등

■ 日 애니메이션의 역사

일본 사람들은 만화영화를 '아니메'라고 부른다. 애니메이션(animation)의 일본식 표현이지만 지금은 일본 만화영화를 뜻하는 세계 공용어가 돼 있다. 아니메는 1914년 영국의 애니메이션이 도쿄에서 상영되면서부터 움 돋기 시작했다. 그 후 3년 뒤 아니메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시모카와 오텐(下川凹天)은 일본 최초의 만화영화를 제작했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매우 원시적인 작품이지만, 그의 실험정신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았다.

아니메가 본격적으로 상업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60년대부터이다. 56년 기업형 아니메 제작사를 설립한 일본 최대 영화사 도에이는 많은 작품과 인재들을 배출하며 극장용 장편 아니메의 시대를 열었다. 또 한편으로는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의 '우주소년 아톰'(1963년) 등 TV용 아니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극장과 TV용 아니메의 인기는 70년대 절정을 이루었다.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우주전함 야마토'(1977년)와 '은하철도 999'(1978년)가 상상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면서 붐을 주도했다. 음반, 캐릭터상품, 관련서적이 인기리에 발매되면서 애니메이션의 상업성이 새삼 부각됐다. '마징가 Z'(1972년작·나가이 고), '도라에몽'(1973년·후지코 후지오), '미래 소년 코난'(1978년·미야자키 하야오) 등이 이 시기 대표작이다. 80년대는 아니메의 상대적인 침체기이다. 대작의 흥행 참패와 컴퓨터 게임기의 등장 등이 원인이다.

그러나 일본 만화영화계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선봉으로 한 아니메계의 재기의 몸부림은 90년대 중반다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97년작 '원령공주'(미야자키 하야오)는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신세기 에반겔리온'(1997년작·안노 히데아키), '공각기동대'(1995년작·오시이 마모루) 등이 90년대 대표작이다.

전문가들이 보는 향후 일본 만화영화의 전망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21세기 문화전쟁의 시대에 아니메는 일본의 가장 강력한 무기중의 하나가 됐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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