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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14>국군 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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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14>국군 파월

입력
2004.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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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월26일 공병 부대와 자체 경비 병력 2,000명으로 이뤄진 비둘기부대의 베트남 파병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그 달 8일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에 따라 비전투원으로 구성된 군사원조단을 베트남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둘기 부대 1진은 2월25일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에 도착했다. 비둘기부대원들이 베트남으로 간 첫번째 한국 군인들은 아니다. 한국은 그 전해 9월 이동외과병원 장병 130명과 태권도 교관단 10명을 베트남에 보낸 바 있다. 의료 부대에 이어 공병 부대와 자체 경비 병력까지 보냄으로써 한국은 20세기의 가장 추악한 전쟁에 본격적으로 연루되기 시작했다.비전투병 파병이 전투병 파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미국은 이내 전투병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그 해 7월 파병을 결정해 이듬해까지 청룡부대, 맹호부대, 혜산진부대, 백마부대를 잇따라 베트남에 보냈다. 이에 따라 베트남에 주둔하는 한국군은 군단급 규모로 늘어나 한국은 미국 다음가는 규모의 파병국이 됐다. 한국군은 미국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에서 슬슬 손을 떼기로 결정한 뒤인 1971년 12월부터 단계적 철수를 시작해 1973년 3월말에 베트남 땅을 완전히 떠났다.

끝내 남베트남 정권을 지켜낼 수 없었던 이 전쟁에 투입된 한국군은 연인원 32만 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5천 여명이 죽고, 1만5천명이 다쳤다. 파병의 상처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2세를 포함해 7만 여명에 이른다는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못지않게 추악한 전쟁이었던 지난해 봄 이라크 전쟁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한국 정부는 의료·공병 부대를 보낸 데 이어 이제 전투병 파병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더러운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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