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의 코흘리개 딸이 며칠 전 마흔 일곱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정성껏 마련한 생일상을 받으면서 많이 기뻤지만 마음 한편은 허전했습니다. 당신이 제게 마련해주셨던 생일상이 생각났기 때문이지요.열 살쯤 되었을까. 저는 원인 모를 병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 올라 죽음의 문턱에 이른 적이 있었지요. 당시 우리 집은 산골에 있어서 주변에 병원이나 약국이 없었습니다. 나팔꽃 씨앗, 펄펄 달인 무즙 같은 민간요법에 의존했는데, 차도가 없었습니다. 나를 진료하던 어느 할머니가 내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당부할 정도였지요. 그러면서 할머니는 "읍내에 애기 약국이란 곳이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당신은 첫 닭 울기가 무섭게 나를 들쳐 업고 10리나 떨어진 읍내로 달렸습니다. 험난하기로 소문난 항아리 재를 넘어야 했습니다. 장정들도 울고 넘는다는 고갯길, 눈은 허리춤까지 차오르고 게다가 저까지 들쳐 업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당신은 수시로 내 숨소리를 확인해가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힘에 부치면 잠시 서서 이따금씩 담배를 피워 무시던 아버지. 하얀 모자를 쓰고 상고대 같은 수염을 달고 있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약국에서 구한 약을 먹고 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주위에선 당신의 사랑이 자식을 살렸다고 말들 했지요. 고비고비 아픈 저를 보며 당신은 자나깨나 걱정했습니다. 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줄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졸이셨지요.
그러다 당신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 때문에 얻은 가슴앓이가 깊은 병이 된 것은 아닌지요. 당신은 임종에 들면서도 가족들을 걱정했습니다.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며 이제는 여생을 즐겨야 할 그 나이에 왜 그리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나셨는가요. 딸 자식이 걱정돼 어떻게 눈을 감으셨나요. 저를 예뻐해주던 당신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합니다. 온 가족이 모여 잠자리에 들면 "요게 누구여?"하면서 이불깃을 끌어다가 저를 다독거려주시던 아버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너무도 그립습니다.
/김인석·경기 여주군 대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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